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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가 권진규

기사입력 | 2017-09-13 11:51

김종호 논설위원

‘일절부중생(一折不重生) 고사유포절(枯死猶抱節).’ 중국 당나라 시인 백거이(772∼864)의 ‘부인고(婦人苦)’ 한 대목이다. ‘한 번 꺾이면 다시는 살아날 수 없으니/ 말라죽더라도 절개는 지켜야 하리’ 하는 의미다. 한국 현대조각의 선구자인 구상(具象) 조각의 거장 권진규(1922∼1973)는 이 구절을 차용해 ‘절지(折枝)여도 포절 끝에 고사하리라’로 시작하는 글을 남겼다. ‘노실(爐室)의 천사를 작업하며 봄, 봄’ 제목으로 1972년 발표한 그 글은 ‘허영과 종교로 분식(粉飾)한 모델, 그 모델의 면피(面皮)를 나풀나풀 벗기면서 진흙을 발라야 한다. 두툼한 입술에서 욕정을 도려내고, 정화수로 뱀 같은 눈언저리를 닦아내야겠다’ 하기도 한다. 마지막은 이렇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건칠(乾漆)을 되풀이하면서 오늘도 봄을 기다린다. 까막까치가 꿈의 청조(靑鳥)를 닮아 하늘로 날아 보내겠다는 것이다.’

그는 작품의 거푸집들을 모조리 없애버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 ‘비운의 조각가’로도 불린다. 찰흙을 빚어 굽는 테라코타, 삼베·모시 등으로 감싼 형상에 마른 옻칠을 입히는 건칠 기법 등에 새 지평을 연 그의 작품이 주는 감동을 시인 황동규는 시 ‘권진규의 테라코타’로 읊었다. ‘속이 빈 테라코타가/ 인간의 속에 대해 속의 말을 한다/ 인간에게 또 어떤 다른 속이 있었던가’ 하고 마무리한 시다. 그의 작품 중에는 구원(救援)의 여인상이 많다. 모두 모델의 실명(實名)을 제목으로 삼았다. 일본 무사시노 미술대학 유학 시절에 만나 결혼한 첫 부인 오기노 도모를 형상화한 ‘도모’를 비롯해 ‘지원’ ‘애자’ ‘경자’ ‘혜정’ ‘선자’ ‘명자’ ‘예선’ ‘희정’ ‘순아’ 등.

그는 이런 말도 했다. “한국의 조각은 신라 때 위대했고, 고려 때 정지했고, 조선 시대엔 장식화했다. 지금의 조각은 외국 작품을 모방하게 돼 사실을 완전히 망각하고 있다.” 한국의 리얼리즘을 정립하고 싶어 했던 그의 작품 세계를 국내외 평론가들은 ‘강인한 리얼리즘’으로 표현한다. 그의 대표작 23점을 모은 ‘권진규 에센스’ 전이 서울 삼청동 PKM 갤러리에서 지난 8월 23일 개막해 오는 10월 14일까지 열린다. 권진규기념사업회는 그의 탄생 100주년인 2022년까지 작품 집대성 도록을 포함한 자료집 5권을 순차적으로 펴낸다고 한다. 뜻깊고 반가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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