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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회고록 “역사의 기록” 인가 “자기 합리화” 인가

김윤희 기자 | 2017-09-13 10:37

- ‘현재에 파문 일으키는 과거’ 정치인 회고록의 세계

이회창, 前대통령들 깎아내려
송민순, 대선 정국에까지 영향
전두환, 거짓 서술로 배포금지

최규하, 회고록 안써 비난받아
신군부 정권찬탈 비밀로 간직

역사적 사건 재조명 계기 불구
개인기억 의존해 왜곡 가능성
치적 미화하고 정적 비판 많아

처칠 ‘세계대전 회고록’ 노벨상
유성룡 ‘징비록’ 사료가치 인정


과거에 대한 기록이 현재에 파문을 일으킨다.

5·18 민주화운동을 ‘광주사태’, 자신을 ‘광주사태 치유와 위무를 위한 씻김굿에 내놓을 제물’이라고 표현한 전두환 전 대통령의 회고록은 지난 4월 세상에 나온 뒤 광주뿐 아니라 광주의 아픔을 함께했던 많은 국민을 공분케 했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지난 8월 펴낸 회고록에서 전직 대통령들에 대한 가감 없는 평가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처럼 정치인들의 회고록은 역사적 사건을 재조명하게 하지만, 현재의 쟁점을 집어삼키며 메가톤급 후폭풍을 일으키는 경우가 적지 않다. 회고록의 특성상 집필자의 기록과 기억에 상당 부분 의존하기 때문이다.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대한 반면, 정적에게는 한없이 가혹한 ‘이중 잣대의 기록’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역사를 다시 끄집어낸 회고록 = 전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5·18의 충격이 가시기 전에 대통령이 된 게 원죄가 됨으로써 십자가를 지게 됐다”고 주장했다.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학살의 주역으로 지목돼 온 전 전 대통령이 자신을 오히려 ‘5·18의 희생자’라고 표현한 것이다. 그의 부인 이순자 씨도 자서전 ‘당신은 외롭지 않다’에서 “우리 내외도 사실 5·18 사태의 억울한 희생자”라고 썼다. 이들의 회고록은 “참회록을 써야 할 사람들이 변명록을 썼다”는 거센 비판을 받았고, 더불어민주당 등을 중심으로 또 한 번의 5·18 진상규명특별법 발의로까지 이어졌다.

이 전 총재도 지난달 1000쪽 분량의 회고록을 냈다. 대선에 세 번 도전했다가 모두 실패한 그는 “대통령에 당선된 분들의 역사는 정사, 야사가 되지만, 내가 있던 야당의 역사는 완전히 잊힌 역사가 된다. 야당의 역사도 남길 필요가 있다”며 회고록 집필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김영삼(YS) 전 대통령을 “동물 같은 정치적 후각, 약간의 이상주의자적 면모를 가진 정치인”이라고 평가했으나 자신과 대선에서 격돌했던 김대중(DJ)·노무현 전 대통령은 각각 “잘못된 남북관계 설정으로 북한이 핵 보유국이 되는 데 일조했다”, “시대 흐름에 민감하게 편승해 부상하는 데 능하다”고 깎아내렸다.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는 문재인 대통령이 2007년 대통령 비서실장 시절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표결 직전 북한의 의중을 먼저 물어보자고 했다고 폭로해 19대 대선 정국을 뜨겁게 달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15년 내놓은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은 남북정상회담 비사를 폭로해 파문을 일으켰다.

반면에 회고록을 남기지 않아 비난을 산 인물도 있다.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부터 전두환 전 대통령 등 신군부의 집권, 이듬해 ‘서울의 봄’과 5·18 광주민주화운동 등 현대사의 격동기를 권부의 핵심에서 보낸 최규하 전 대통령이 그 주인공이다. 신군부의 정권 찬탈과 5·18의 진상 등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인물이었던 만큼 그의 증언이나 회고록 출간 여부는 지속적인 관심 대상이었다. 그러나 2006년 10월 87세로 유명을 달리할 때까지 최 전 대통령은 입을 열지 않았다.

◇역사의 기록인가, 자기 합리화 수단인가 = 회고록(回顧錄)의 사전적 의미는 ‘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하며 적은 기록’이다. 그 자체로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갖는다. 윈스턴 처칠은 세계대전 참상을 생생하게 서술한 ‘제2차 세계대전 회고록’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았고, 임진왜란 발발 당시부터 7년간의 전쟁 참상을 기록한 유성룡의 ‘징비록’도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일부 정치인들의 회고록에도 독재정권 하의 언론 탄압과 검열로 왜곡된 역사적 진실을 직접 전달하겠다는 역사적 소명의식이 묻어 있다. YS는 회고록 ‘민주주의를 위한 나의 투쟁’에서 “이 나라의 현대 정치사, 민주주의의 역사를 꼭 기록으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나에게 남겨진 마지막 작업이요 소명”이라고 썼다. DJ는 본인의 자서전에 “내 삶을 국민에게 고하고, 역사에 바치는 마지막 의식으로 알고 지난 세월을 경건하게 풀어보겠다”고 했다.

그러나 개인의 기억에 의존한 정치인 회고록은 상당한 정치적 파장을 가져오기도 한다. 특히 재임 중 행위에 대한 성찰과 반성보다 정적에 대한 비판과 비화를 담음으로써 진영 싸움의 발단이 되는 일이 종종 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2011년 출간한 회고록에서 1992년 대선 당시 YS 측에 선거자금으로 3000억 원을 지원했다고 주장했다. YS는 측근들에게 그 내용을 보고받은 뒤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 사람 지금 (건강이) 어떤 상태냐”고 물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2007년 대선 과정에서 최대 논란거리였던 BBK 의혹에 대해 단 한 줄도 쓰지 않았다. 오히려 “경선 과정에서 수많은 네거티브 공격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초심을 지키려 했다”고 했다. 혈세 낭비라는 비판을 받은 자원외교, 4대강 사업에 대해서도 책임을 떠넘기거나 재정투자로 미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윤희·이은지 기자 wor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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