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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할머니와 구청 공무원… 자연스러운 웃음과 울림

김구철 기자 | 2017-09-12 10:29

영화 ‘아이 캔 스피크’ 21일 개봉

특정 주제를 의미 있게 전달하며 재미까지 안겨주는 영화는 흔치 않다. 의미에 무게를 둬 상황을 세세하게 설명하다 보면 영화적 재미가 사라지고, 재미만을 추구하면 주제에 힘이 실리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무거운 주제를 가볍게 풀어내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오는 21일 개봉하는 영화 ‘아이 캔 스피크’(사진)가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영화는 시작부터 중반 이후까지 전혀 다른 이야기를 유쾌하게 펼치며 관객을 무장해제시킨다. 이 영화의 소재를 알고 보는 관객도 초반 분위기에 휩쓸려 시원하게 웃다 보면 어느새 가슴이 뜨거워지고,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의식하고서야 비로소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에 다가가게 된다.

재개발로 철거위기에 처한 전통시장에서 옷 수선 일을 하며 사는 나옥분 할머니(나문희)는 20년 동안 구청에 8000건이 넘는 민원을 접수한 ‘민원왕’이다. 옥분의 민원은 불법 입간판 철거부터 가로등 보수까지 다양하다. 구청 공무원들은 옥분만 나타나면 혼비백산 피하기 바쁘다. 원칙주의자인 9급 공무원 박민재(이제훈)는 이 구청으로 전근 온 첫날 옥분과 마주치고, 두 사람의 신경전이 시작된다. 까칠한 성격의 민재는 구청 ‘블랙리스트 1호’인 옥분과 기 싸움을 벌이지만 동생의 저녁 식사를 챙겨주는 옥분에게 조금씩 마음을 연다. 옥분은 미국에 살며 한국말을 전혀 못 하는 동생과 전화통화를 하기 위해 영어학원에 나가지만 도통 실력이 늘지 않는다. 그러던 중 민재의 유창한 영어 실력을 목격한 옥분이 민재에게 영어를 가르쳐 달라고 조르고, 민재는 민원을 내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과외를 시작한다.

앞부분 코미디는 옥분이 민재에게서 영어를 배우며 일어나는 여러 에피소드와 두 사람의 주변인들이 담당한다. 억지 대사나 몸짓, 표정으로 웃기는 것이 아니라 상황이 자연스러운 웃음을 이끌어 낸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영어를 배운 옥분이 60년간 혼자 삭여온 자신의 아픈 과거사를 드러내며 용기 있게 나서는 드라마가 후반부를 장식한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는 실제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와 고 김군자 할머니가 지난 2007년 미국 의회 공개 청문회에 나가 증언한 후 미 하원이 일본군 위안부 사죄 결의안을 채택한 것을 모티브로 했다. 하지만 영화는 관객에게 이 사실을 각인시키려 하지 않고, 그저 옥분의 삶을 담담하게 따라가며 관객이 그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나문희의 관록 연기가 영화의 맛을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캐릭터의 심리변화 폭이 크지만 그는 전혀 흔들림 없이 중심을 잡고, 상황에 맞게 분위기를 살리며 관객을 웃기고 울린다. 여기에 이제훈의 절제된 연기가 가세해 이야기의 개연성에 힘이 실린다.

이 영화 연출자인 김현석 감독은 “위안부 피해자들의 후일담과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우회적으로 다뤘다”며 “코미디와 영화의 메시지가 최대한 따로 놀지 않게 노력을 기울였다”고 연출의도를 밝혔다. 12세 이상 관람가.

김구철 기자 kcki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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