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김영호 성신여대 교수 국제정치학

대한민국의 건국 시점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으로 보는 문재인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정체성뿐만 아니라 국가 정체성에 대한 국민의 인식에 커다란 혼란을 불러일으키고 국론을 분열시키고 있다. 문 대통령의 1919년 건국설 주장을 받아들일 경우 대한민국 대통령의 정체성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1919년에 건국됐다고 한다면 1948년 7월 17일에 제정된 헌법을 ‘수정헌법’이 아니라 ‘제헌헌법’이라고 하는 이유도 전혀 설명이 안 된다.

문 대통령의 주장과 달리 “대한민국은 위대한 3·1운동에 의해 성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아 1948년에 건국되었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史實)이고, 정치학적·국제법적으로도 학계에서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임시정부는 1948년 대한민국 건국의 정신적·사상적 정당성의 근거를 제시한 것으로 봐야지 그 자체를 건국으로 볼 수는 없다. 국가는 영토·국민·주권의 세 요소로 구성돼 있다. 임시정부는 3·1운동 직후 한반도라는 영토에 살고 있는 한국인에 대해서 주권과 실효적 지배력을 행사하지 못했다.1919년 건국설은 애국선열들의 나라 독립과 건국을 위한 고귀한 희생을 오히려 폄훼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1919년 건국설을 부정하는 중요한 역사학적 사료로 1941년 11월 임시정부가 발표한 ‘대한민국 건국강령’을 들 수 있다. 이 강령은 총강(總綱)·복국(復國)·건국(建國) 3개의 장으로 구성돼 있다. 이 강령은 일제에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한 독립운동 시기를 ‘복국’ 시기로 보고, 이 시기가 완성된 다음에 본격적으로 ‘건국’에 착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기서 보는 것처럼 임시정부는 그 자체의 문건에서 1919년 임시정부 수립 이후 1945년 해방될 때까지의 시기를 건국이 완료된 것이 아니라, 독립운동 시기로 보고 있다. 이런 임시정부의 문건에 비춰보면 1919년 건국설은 역사적 사료에 의해서도 전혀 뒷받침되지 않는다.

1919년 임시정부 수립 이후 김규식 선생 등 임정 지도자들은 제1차 세계대전을 종결짓는 평화회담이 열리고 있던 파리로 가서 미국과 영국과 프랑스로부터 임시정부를 국가로서 국제적으로 승인 받기 위한 독립외교운동을 펼쳤다. 그러나 임시정부는 파리에서뿐만 아니라 그 후에도 국가로서 국제적 승인을 얻지 못했다.

국제사회가 임시정부를 국가로서 인정해주지 않은 것은 임정이 한반도의 한국인에 대해서 최고의 권력인 주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1948년 5월 10일 보통·평등·비밀·직접 선거라는 4대 원칙에 따른 ‘1948년 민주혁명’을 통해 제헌의회를 구성하고 제헌헌법을 제정해 대한민국이 건국되고 정부가 수립됐던 것이다. 1948년 12월 12일 유엔총회는 대한민국을 한반도상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인정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이후 대한민국은 미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로부터 근대국가로서 국제법적으로 인정받고 구한말 이후 한국인이 그렇게도 열망했던 독립적 주권국가로서 국제사회의 일원이 됐고, 오늘날의 번영을 구가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던 것이다.

1948년 건국을 뒷받침하는 이런 근거들에도 불구하고 1919년 건국설을 주장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국가 정체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문 대통령은 올바른 역사 인식을 갖고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더는 국론 분열을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