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ICBM ‘화성-14형’에 우크라이나 엔진 RD-250이 장착됐거나 그 기술이 적용됐다는 증언은 충격적이다. 핵 개발에 파키스탄이 관여했다는 주장과는 차원이 다르다. 러시아가 직접 개입 또는 묵인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 제재에 있어 중국의 ‘뒷문’도 문제인데, 러시아가 ‘옆문’ 역할까지 해온 셈이다. 지난 14일 미국 언론 보도로 이런 사실이 공개된 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사실 자체는 당연시하면서 책임 떠넘기기 공방을 벌이고 있다. 우크라이나 국가우주청은 러시아에 공급한 엔진이 북한으로 들어갔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러시아 국가안보국방위원회는 지난해 3월 30일에서 6월 1일 RD-250 생산업체인 우크라이나 유즈마슈의 엔지니어 6∼10명이 북한을 방문한 사실 등을 폭로했다.

핵·미사일 관련 부품과 기술이 북한으로 들어가는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방관하는 식이라면 대북 제재 결의는 무용지물이다. 안보리 차원에서 진상 조사에 나서야 한다. 책임 소재를 규명해 해당 국가·기업·개인에 대한 제재도 추진해야 한다. 그러지 않아도 구 소련권 국가들의 핵·미사일 유출 문제는 핵 확산 방지와 관련, 국제적 관심사다. 따라서 한국 정부는 외교력을 총동원해 유엔이 이번 사건의 진상을 확실히 규명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또, 이참에 대북 제재망을 더 촘촘하게 짜야 한다.

한국 정보 당국도 구 소련권 핵·미사일 유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미 6년 전 북한 공작원 2명이 우크라이나 로켓 생산기업인 유즈마슈로부터 미사일 기술을 빼내려다 적발돼 8년형을 받은 바 있다. 유즈마슈는 2014년 우크라이나 내전으로 러시아에 대한 로켓 공급이 중단되면서 재정난에 시달리고, 기술자들은 일자리를 잃고 있다. 북한엔 절호의 기회다. 구 소련권에서 또 다른 유즈마슈가 언제든 나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