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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방송된 tvN 예능프로그램 ‘수상한 가수’. 걸그룹 레인보우의 멤버 지숙의 모습 뒤에서 노래를 부른 가수에게 시선이 집중됐다. 그가 선택한 곡은 서문탁의 ‘사랑, 결코 시들지 않는’. 그의 열창에 판정단으로 참여한 이수근은 “한이 서려 있다”며 “답답한 마음이 뻥 뚫리는 느낌”이라고 평했다.

그의 정체는 바로 트로트 가수 장미였다. 2004년 3인조 그룹 리트머스로 데뷔해 ‘신디’라는 이름으로 먼저 알려진 가수였다. 걸그룹 못지않은 외모를 가진 그를 향해 또 다른 판정단 붐은 “여리여리한 줄 알았는데 폭포수 고음이었다”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노래를 안 하고 살 수 없었다”는 장미는 마치 가슴에 맺힌 한을 풀듯 노래를 불렀다. 그 진심은 판정단을 넘어 시청자들의 마음에도 와 닿았다. ‘수상한 가수’가 방송되는 동안 장미의 이름이 검색어 순위에 오른 것이 이를 방증한다.

“녹화 2주 전에 노래방에 가서 연습했어요. 이 노래를 부르다가 무대 위에서 쓰러져도 여한이 없겠다는 심정이었죠. 너무 무리를 했는지 목소리가 갈라져서 녹화 직전 1주일 동안 약을 먹고 쉬었어요. ‘노래를 못하게 되면 어떡하지’라는 불안감이 엄습했죠. 그만큼 소중하고 절실한 무대였어요. ‘수상한 가수’를 녹화하면서 저는 노래 없이 살 수 없는 사람이란 것을 새삼 깨달았어요.”

MC 강호동은 “‘수상한 가수’ 역대 출연자 중 최고의 고음을 가졌다”고 칭찬했다. 고음의 1인자라 할 수 있는 국카스텐 하현우조차 “어떻게 그런 몸에서 이렇게 파워풀한 성량이 나오냐”고 놀라움을 표시했다. 쏟아지는 칭찬에 장미는 눈물로 답할 수밖에 없었다.

“노래를 시작한 후 처음으로 인정받는 기분이었어요. 마치 그동안 제가 겪은 고생을 한꺼번에 보상받는 것 같았죠. 새벽 5시부터 녹화장에 갈 준비를 하고 오후 6시에 녹화를 시작했는데, 잘 견뎌준 제 자신에게도 감사해요. 그 무대가 제게 너무 소중했기 때문에 모든 것을 감수하고 후회없는 무대를 선보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장미는 그야말로 산전수전 다 겪었다. 2003년 MBC 시트콤 ‘논스톱3’에 얼굴을 비친 이후 MTV ‘카운트다운’ 비디오자키, SBS ‘텐텐클럽’ 등을 두루 거쳤다. 홍경민과는 국군방송에서 함께 일했던 인연으로 KBS 1TV ‘열린 음악회’에서 13년 만에 다시 만나 ‘원 서머 나이트’를 부르기도 했다.

“돌아보면 참 긴 길을 돌아온 것 같아요. 저를 알아보는 분들은 많지 않지만, 과거의 인연들이 하나씩 이어져서 제가 계속 활동하는데 도움이 되고 있어요. 그러다가 ‘아~ 예전의 그 신디!’라고 알아보는 분이 계시면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하지만 과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더 기억될 장미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이후 장미는 트로트로 전향했다. 2007년 쓰리쓰리라는 그룹으로 활동하다가 2008년 첫 솔로 세미 트로트 앨범을 냈다. 2015년에는 ‘꿀이다’를 발표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재미난 퍼포먼스와 뮤직비디오 덕분에 해외에서도 팬이 늘었다. 그의 인스타그랩 팔로어는 무려 23만 명이다.

“인도네시아와 아랍권의 나이 어린 애들이 제 노래를 많이 좋아해 준다는 사실에 저도 놀랐어요. 그들이 팬페이지를 만들어서 스스로 활동해주는 모습에 정말 감격했어요. SNS에서 생방송을 열면 모로코나 알제리에서 접속하는 팬들도 꽤 많아요. 트로트가 한국 전통 가요로만 알려졌는데 향후 좋은 한류 콘텐츠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해요.”

사실 트로트는 장미의 빼어난 가창력을 드러내는 데 어려움이 있는 장르다. 지난해 9월에도 서울 여의도 한강 물빛 공원에서 오픈 무대에 올라 팝송 ‘리슨’을 불러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트로트를 부르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을까. 하지만 장미는 “절대 그렇지 않다”며 손사래를 친다.

“누가 노래 장르에 등급을 매길 수 있을까요? 트로트는 모든 연령층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더 없이 좋은 장르예요. 트로트에 대한 그런 편견을 깨는 것 또한 제가 할 역할이 아닐까요? 또 세미 트로트 외에도 댄스풍의 노래 또한 꾸준히 발표할 계획이기 때문에 장미의 다양한 매력을 맛볼 수 있을 거예요.”

장미의 참여한 ‘수상한 가수’ 녹화 현장에는 선배 트로트 가수인 홍진영도 자리했다. 이미 장미가 겪었을 편견과 무명의 시간을 딛고 정상에 우뚝 선 장미에게 홍진영은 역시 눈물을 글썽이며 “트로트 가수로 처음 시작할 때 나도 너무 주눅 들어있었다. 여자 트로트 가수로 산다는 게 정말 독하게 마음을 먹어야 하는 거다”며 “장미는 정말 뛰어난 실력을 가진 만큼 어디서 기 죽지 않고 활동했으면 좋겠다”고 응원했다.

“너무 공감하는 조언이어서 몇 번을 되뇌면서 가슴에 새겼어요. 행사장에 가면 제가 오프닝을 하면 홍진영 씨는 항상 클로징을 하는 멋진 분이죠. 그래서 마주친 적은 없지만 마음 속으로 응원하면서 롤모델처럼 삼고 있어요. ‘수상한 가수’에 출연하며 장미라는 가수를 다시금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 정말 기뻐요. 하지만 이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걸, 대중들도 꼭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