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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3) 57장 갑남을녀 - 16

기사입력 | 2017-08-08 09:57

“이성갑 대리세요?”

사내가 묻자 이성갑이 전화기를 고쳐 쥐었다. 회사 전화로 걸려왔으니 거래처일 것이었다.

“예, 이성갑입니다.”

“여긴 유라시아그룹 회장실인데요.”

숨만 들이켠 이성갑에게 사내가 정중하게 말을 이었다.

“저는 비서실 장국진 과장입니다.”

“아, 예. 안녕하십니까?”

이성갑의 정신이 조금 나갔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장난 전화는 아닌 것 같다. 부루스타컴퓨터는 유라시아그룹의 컴퓨터 A/S를 맡고 있지만 그룹 회장실과는 전혀 인연이 없다. 그룹 총무부의 담당 과장이 오복수의 생살여탈권을 쥔 염라대왕일 뿐이다. 그때 장국진이라는 사내가 말을 이었다.

“오늘 오후에 시간이 있으십니까? 저희 회장님께서 이 대리님을 뵙자고 하셔서요.”

“예? 저, 저를요? 회장님이요?”

“예, 그렇습니다. 시간 좀 내주셨으면 좋겠는데요. 오후 3시에 저희 그룹 회장 비서실로 와 주시죠. 기다리겠습니다.”

“저, 그, 그런데 무슨 일로…….”

이성갑의 얼굴에서 진땀이 솟아났다. 말까지 더듬으며 필사적으로 물었더니 사내의 목소리에 웃음기가 섞였다.

“이 대리님이 팬카페에 쓴 글을 읽으시고 저희 회장님께서 감동을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만나보고 싶다고 하신 것이지요.”

이성갑의 어깨가 늘어졌다. 그렇구나. 오복수의 권유로 가입한 서동수의 팬카페다. 유라시아그룹 회장 김광도가 지원하는 카페로 회원 수가 5만 명이 넘는다. 그곳에 이성갑이 가입인사 겸 제 인생담을 올렸던 것이다. 그날 오후 3시에 이성갑은 유라시아그룹 회장실에서 회장 김광도를 만나고 있다. 방 안에는 비서실장까지 셋이다. 인사를 한 이성갑은 잔뜩 긴장한 채 시선도 들지 못하고 숨까지 죽이고 있다. 그때 김광도가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한랜드에서 직장을 얻었다는 글을 읽었어. 그건 나도 마찬가지고 아마 수만 명, 수십만 명이 이성갑 씨하고 비슷한 경험을 했을 거야.”

이성갑은 김광도의 가슴께만 보았고 말이 이어졌다.

“그런데 이 문장이 마음에 들더구먼. ‘나는 감사하지 않고 살아왔다는 것을 이곳에 와서 느끼게 되었다. 감사하는 마음이 있어야 배려가 일어난다는 것을 이곳에 와서야 깨닫게 되었다.’”

김광도가 외우고 있었는지 술술 말하고는 이성갑을 보았다.

“어때? 맞지?”

“예, 회장님.”

“내가 그랬어.”

그때야 이성갑과 김광도의 시선이 마주쳤다. 김광도가 말을 이었다.

“내가 한 줄 더 붙이고 싶었어. ‘환경은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남한테 의지하면 안 된다.’”

김광도의 얼굴에 다시 웃음이 떠올랐다.

“이러면 완벽해졌을 거야.”

이성갑은 시선만 주었고 김광도가 다시 물었다.

“어때? 내일부터 나하고 같이 일할 생각이 없나? 우선 내 비서실에서 일을 배우도록 하지. 여기 있는 비서실장이 자네한테 적당한 직책을 줄 테니까.”

이성갑이 이번에도 숨을 끊었을 때 김광도의 말이 이어졌다.

“자네 회사 사장한테 우리 회사에서 양해를 구할 거네. 아마 충분한 보답을 하겠지. 어때, 나하고 같이 근무하겠나?”

이성갑은 머리가 몽롱해져서 잠깐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심장은 거칠게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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