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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2) 57장 갑남을녀 - 15

기사입력 | 2017-08-07 08:13

김유미는 서동수의 팬으로 지난 대선 때부터 서동수의 팬클럽에 가입해서 활동을 했다. 김유미에게 서동수를 좋아하는 이유를 물으면 첫째가 ‘정직함’이라고 한다. 서동수가 여자관계를 숨기지 않는 것이 그런 인상을 주었는지 모르지만 그것이 좋아하는 이유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김유미는 그 후로 누가 뭐라건 자신의 판단을 바꾸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처럼 우연한 기회에 서동수의 팬이 되었지만 자신에게 특별한 불이익이 돌아오지 않는 한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오늘도 퇴근하고 커피숍에서 친구 정미현을 기다리고 있는 동안 휴대전화로 뉴스를 보고 있다. 서동수가 유라시아연방 대통령이 됨으로써 마침내 ‘세계를 제패하게 된다’는 정치평론가의 해설을 리시버로 듣고 있는 것이다. 평론가가 열띤 목소리로 말했다.

“이것은 21세기식 세계 정복인 것입니다.”

“알렉산더, 나폴레옹, 칭기즈칸을 뛰어넘어 아시아 전 대륙, 중동과 유럽까지를 석권한 제국, 유라시아연방을 대한민국의 지도자 서동수가 장악하게 되는 것입니다.”

김유미의 심장박동이 빨라졌고 눈에서 열기가 났다. 과연 그렇다. 해설자의 말이 잠깐 멈춰졌고 화면에 유라시아연방의 지도가 펼쳐졌다. 유라시아연방 지도는 태극기가 바탕에 덮여 있었으므로 김유미는 누가 볼까 봐 걱정까지 되었다. 그 ‘누구’는 타국(他國)인일 것이다.

“어, 기다렸어?” 하면서 정미현이 앞에 앉는 바람에 김유미는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오후 7시 5분, 정미현은 여행사 직원으로 김유미와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까지 동창이다. 10년이 넘도록 단짝이어서 상대방의 남자관계는 속속들이 안다. 둘의 대화 대부분이 남자관계였기 때문이다. 커피를 시킨 정미현이 대뜸 물었다.

“연락 없냐?”

김유미가 대답 대신 식은 커피를 한 모금 삼켰더니 정미현이 코웃음을 쳤다.

“뻔하지 뭐, 의기소침해서 빌빌거리는 형편에 네 전번 떴다고 얼씨구 하면서 전화 받지 못한 거야.”

“…….”

“아직 자존심은 남아 있는 거지. 아니, 이성이랄까.”

“…….”

“통화 끝나고 나면 더 허무해진다는 것을 예상하고 있는 거지. 네 환멸이 더 짙어진다는 것까지.”

“…….”

“내가 너무 철학적인가? 요즘 인도 관광객을 많이 상대했더니 좀 달라진 것 같다. 그 사람들 분위기가 그래.”

“…….”

“네가 서동수 팬이 되고 나서 남자관계가 많아진 것처럼 말이야.”

“시끄러, 이 드러운 년아.”

눈을 흘긴 김유미가 물었다.

“여자 생긴 것이 아닐까?”

“그땐 직장을 잡았다는 전제조건이 필요하지. 그것이 가능할 것 같냐?”

종업원이 갖다 놓은 커피잔을 들면서 정미현이 말을 이었다.

“한랜드가 희망의 땅, 성취의 땅이라고 불린 건 그냥 구호야. 우리 여행사가 쓰레기 같은 외국 동네에도 온갖 미사여구를 붙여 팔아먹는 것처럼.”

“…….”

“혹시 죽었는지도 몰라.”

한 모금 커피를 삼킨 정미현이 넓은 얼굴을 들고 똑바로 김유미를 보았다.

“자, 이제 고해성사가 끝났으니까 놀러 가자. 오늘은 홍대 앞 물이 좋다는 ‘소방서’에 가보자.”

그 순간 김유미는 이성갑에게 다시 연락을 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래, 정직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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