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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0) 57장 갑남을녀 - 3

기사입력 | 2017-07-20 14:37

“나도 여기 올 때는 주머니에 350불뿐이었어.”

다음 날 저녁, 오늘도 ‘우리’ 식당에서 안주와 소주를 시켜 먹으면서 오복수가 말했다.

“난 서울에서 한 번, 중국에서 두 번 실패를 했고 이혼까지 했지. 이곳에 올 때는 희망은 품고 있었지만 막막했어.”

이성갑이 소리죽여 숨을 들이켰다. 자신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더 심하다. 자신은 서울을 떠날 때 김유미한테 ‘여행’을 한다고 허세라도 부릴 여유가 있었다. 그때 술잔을 든 오복수가 지그시 이성갑을 보았다.

“이 대리.”

“예, 사장님.”

“내가 어제 여기 들어와서 이 대리가 혼자 앉아 있는 것을 보았어.”

한 모금 술을 삼킨 오복수가 빙그레 웃었다. 눈이 가늘어졌고 하회탈 같은 얼굴로 변했다.

“사람의 처지는 방심하고 앉아 있을 때 드러나지. 난 이 대리의 가라앉은 모습을 보고 3년 전의 나를 떠올렸어. 내가 저런 모습이었지 않나 하고.”

“…….”

“그래서 주인한테 이 대리하고 합석시켜달라고 부탁한 거네.”

그때 주인 김영태가 다가왔으므로 오복수가 웃으며 말했다.

“어제 내가 합석시켜달라고 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아, 그러셨지요. 같이 나가시더니 두 분이 오늘은 같이 오셨네요?”

다가온 김영태가 둘을 번갈아 보았다.

“좋은 일 있습니까?”

“내가 이 대리를 채용했어요.”

“아이고, 축하합니다.”

활짝 웃은 김영태가 손님 때문에 서둘러 옆을 떠나며 말했다.

“축하주 한잔하십시다.”

김영태의 뒷모습을 보면서 오복수가 말을 이었다.

“인간은 살아 있는 한 기회가 있어. 기회가 온다는 말이야.”

“예, 사장님.”

“올 때까지 기다리면 돼.”

“예, 사장님.”

이성갑의 눈앞에 김유미의 모습이 떠올랐다. 기다리다가 지친 것은 과연 누구인가? 나인가? 아니면 김유미인가? 술잔을 든 이성갑이 흐린 눈으로 오복수를 보았다.

“사장님, 저는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복수의 시선을 받은 이성갑의 얼굴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운 좋게 사장님을 만난 것이지요. 마치 복권에 당첨된 것처럼 말입니다.”

이성갑에게는 이게 답이다. 지금까지 수백 번 희망이 절망으로, 기대가 좌절로 뒤바뀌었으니까. 그래서 아예 희망을, 기대를 걸지 않으려고 했다. 절망과 좌절을 겪지 않으려는 자위책으로, 그것이 갑남(甲男)의 일상이었다. 평범한 남자, 그때 오복수가 물었다.

“애인 있나? 여자친구 있어?”

“없습니다.”

했다가 이성갑이 고쳤다.

“헤어졌습니다.”

“위대한 인물들은 다 이혼을 했지.”

다시 술잔을 든 오복수가 정색을 했다.

“여자하고 많이 헤어질수록 경륜이 붙는 거야. 나무의 나이테처럼 말이야.”

“…….”

“그 경험을 바탕으로 새 여자한테 더 멋진 서비스를 해줄 수가 있는 거야.”

이성갑은 다른 것은 몰라도 이 충고는 한쪽 귀로 내보내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했다. 나머지는 은인의 말을 따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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