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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우 서강대 교수·정치학

TV로 중계된 인사청문회를 잠시만 보고 있어도 발언하는 의원이 여당인지 야당인지 금방 알 수 있다. 청문 대상자를 공격하는 발언은 야당 의원의 몫이고, 두둔하거나 변명할 기회를 주는 것은 어김없이 여당 의원들이다. 지난 정부에서는 여·야당의 위치가 지금과 반대였고, 후보자를 대하는 청문위원들의 태도 역시 지금과 정반대였다. 국민을 대표하는 청문회인지 정당의 입장을 대변하는 청문회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2000년 도입 이후 청문회의 질은 나아진 게 없다.

정치 전문가들은 한국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대통령과 국회의 관계가 정상화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인사청문회를 통해 본 국회는 이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야당은 청문 대상자(후보자)의 적격성뿐만 아니라 정치 셈법에 따라 보고서 채택을 거부하고, 여당은 모든 후보자를 통과시켜야 한다는 전략에 매달려 있다. ‘여당의 방어, 야당의 공세’라는 전형적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인사청문회는 대통령이 임명하거나 지명하는 공직 후보자의 자질과 능력을 국회가 검증하는 제도로서, 국회가 대통령의 권한을 견제할 수 있는 중요한 권한이다. 따라서 청문위원인 국회의원들은 소속 정당과 관계없이 국회의 구성원으로서 국회의 본분인 행정부 견제에 충실해야 한다. 즉, 청문회의 취지를 살리려면 의원들이 여야당 구분 없이 청문 대상 인물 평가에 힘을 모아야 한다. 그런데 현실에서 청문회는 또 다른 여·야당의 정쟁의 장이 될 뿐이다.

10년 전에 발표된 국무총리 후보자 청문회 회의록 내용을 분석한 논문에 따르면, 윤리나 과거 공직 업무의 부적절성에 대한 언급 빈도는 야당 의원들이 여당 의원들보다 최소 5배 이상 많았다. 그리고 이에 대한 소명 기회를 제공한 경우는 여당 의원들이 압도적이었다. 이 논문에서는 여·야당 청문회 위원들 사이의 발언 내용의 차이는 위원들이 국회의원으로서 대통령의 권한을 견제한다는 국회의원의 의무와 동떨어진 것으로 평가했다. 불행히도 10년 전 청문회 평가 내용이 현재의 청문회 평가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청문회가 여방야공(與防野攻)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원인이 국회의원의 자율성이 낮기 때문이라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대통령에게 무조건 충성한 결과가 어떤 것인지를 바로 직전 박근혜 정부의 비극적 종말을 통해 통감했다. 그런데도 이른바 진보 정부에서도 대통령에게 충성하는 여당의 정치 문화가 그대로 존속되고 있다면 향후 한국 정치의 발전은 요원하다. 그동안의 경험이 보여주듯이 여당이 대통령으로부터 자율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야당은 여당을 제쳐 두고 대통령과 직접 정치협상을 시도한다. 그 결과는 국회 파행과 대통령의 국회 비난이라는 과거 정치에서 본 악순환의 반복이다.

과거 답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청문회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생각해 보자.

먼저, 기간이 20일로 너무 짧고, 또 기간을 연장할 수 없다는 점이 청문회를 부실하게 만드는 근본적인 문제다. 인사청문회의 심사 기간이 15일 그리고 실시 기간은 3일로 정해져 있는 것을 청문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연장할 수 있도록 바꿀 필요가 있다. 부실한 자료 제출이나 허술한 검증은 시간적 제약이 없어진다면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청문 대상자에 대한 질의 전에 여·야 청문위원들이 제출된 서류를 바탕으로 대상자의 문제점을 논의할 기회가 있어야 한다. 위원들 간 후보자 평가 내용에 대한 공감대를 넓힌다면 청문회가 당리당략으로 흐르는 현상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각 정당에서는 의원들끼리 검증 내용에 대한 역할을 나눠 집중 검증해야 한다. 위원들의 중언부언(重言復言) 질문과 후보자에게 호통치는 모습은 청문회의 격을 떨어뜨린다.

청문회를 제대로 작동시키는 것이 국회 정상화의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청문회에서 위원들은 국민을 대표해 질문하는 것임을 수시로 강조한다. 그런데 발언 내용은 소속 정당의 이익에 얽매이는 경우가 다반사다. TV로 생중계되면서 국민의 큰 관심을 받는 국회 운영이 인사청문회다. 신뢰받는 국회가 되려면 내부적 권한부터 제대로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야당의 대통령에 대한 무조건적 반대나 여당의 절대적 지지라는 편 가르기 정치는 국회 스스로가 대통령에게 종속돼 있음을 자인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