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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푸틴 ‘가스관’의 地經學

기사입력 | 2017-05-24 12:20


황성준 논설위원

노무현 정부 당시 추진됐다가 박근혜 정부 들어와 사실상 중단된 러시아 가스관의 한반도 연결 사업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러시아 특사인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러시아 가스관 연결 사업을 주요 의제로 논의하라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12일 푸틴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시베리아 천연가스관이 한국까지 내려오고, 한국의 철도망이 시베리아 철도망과 연결되는 시대가 하루빨리 오기를 기대하며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문 대통령은 러시아 가스관 연결 사업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첫째, 노 전 대통령의 숙원이었기 때문이다. 이 사업은 노 전 대통령이 2004년 러시아를 방문해 시베리아 가스관 및 송유관을 한국으로 연결하는 사업을 추진하기로 푸틴 대통령과 합의한 뒤, 한·러 양국 총리가 2006년 한·러 가스산업 협력 협정에 서명함으로써 추진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후 가스관이 통과해야 하는 북한 문제로 난관에 봉착했으며, 결국 박 정부 때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둘째, 이 사업은 문 대통령이 역점사업으로 여기는 미세먼지 해법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 석탄화력발전소를 줄여나갈 방침인데, 시베리아 천연가스를 석탄 대체 에너지원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이 사업에 북한을 참여시켜 한반도 평화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가스 통과세란 경제적 이익을 북한에 줌으로써 남북 경협과 대화의 물꼬를 마련한다는 복안이다.

러시아는 적극 호응하고 있다. 첫째, 석유·천연가스 수출이 주 수입원인 러시아는 새로운 시장을 필요로 한다. 이에 지난 2011년 9월 사할린-하바롭스크-블라디보스토크 가스관을 완공했으며, 사하 차얀다 가스전을 하바롭스크-블라디보스토크로 연결하는 가스관 ‘시베리아의 힘’을 2014년 9월에 착공했다.(2019년 완공 예정) 러시아는 2014년 5월 러·중 가스 30년 공급 계약을 체결했는데, 한국·일본으로 시장을 확장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둘째, 러시아는 가스관을 지경학(地經學·geoecomonics)의 주요 수단으로 활용한다. 한국-북한-러시아를 잇는 가스관이 연결되고, 한국의 러시아 가스 의존도가 높아지면, 한국과 북한에 대한 영향력이 증가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러시아는 북한에 대한 영향력 회복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2014년 5월 북한의 대(對)러시아 부채 110억 달러 가운데 90%를 탕감해 줬으며, 2010년 2만1000명 수준이었던 러시아 극동 지역의 북한 벌목공·건설노동자 수를 최근 5만 명 수준으로 늘렸다. 셋째, 가스관 연결 사업이 낙후되고 계속 인구가 줄고 있는 러시아 극동 지역 발전에 활력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가스관 연결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우선, 북한이 문제다. 북한이 이 사업에 적극 참여할지 의문이며, 설령 참여한다 하더라도 훗날 가스관 봉쇄를 무기로 한국을 협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러시아 가스 의존도 심화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미 유럽 안보의 가장 큰 화두 중 하나가 러시아 가스 의존 문제다. 러시아는 2006년과 2009년 우크라이나 가스관을 봉쇄하는 등 가스관을 국제정치 무기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독일마저도 가스 공급 문제 때문에 러시아에 대해 할 말을 제대로 못 하고 있다.

보다 중요한 문제는 미국의 셰일가스다. 한·미 양국은 올해부터 미국 셰일가스를 본격 도입하기로 계약을 체결했다. 한국가스공사는 2037년까지 20년간 280만t, SK E&S는 2019년부터 2039년까지 연 220만t을 수입하기로 했다. 단순히 러시아 가스도 들여오고 미국 셰일가스도 들여오면 된다고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미국은 셰일가스를 아시아·태평양 지역 지경학의 주요 지렛대로 간주하고 있다. 이에 한국이나 일본 혹은 대만에 대규모 미국 셰일가스 허브기지를 만들어 ‘아시아 셰일가스 에너지 동맹’을 구축한다는 구상이 나오고 있다. 만약 한국이 러시아 가스관을 선택하고 셰일가스 기지가 일본이나 대만으로 가게 된다면, 한국은 미국의 지경학 방어선에서 빠지게 된다.

중국의 최대 약점도 에너지다.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도 미 해군에 의해 해상 수송로를 봉쇄당할 수 있다는 ‘믈라카(Malacca) 딜레마’를 벗어나기 위한 노력이다. 중국도 셰일가스 개발에 나서고 있으나, 기술상의 문제로 상업성 있는 셰일 오일·가스를 아직은 생산하지 못하고 있어서 고민하고 있다. 이같이 에너지 공급 문제는 국가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 러시아 가스관 문제도 국가 대전략(grand strategy) 속에서 치밀한 논의를 거쳐 결정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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