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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충동’ 류승범의 카리스마… 무대서도 통했네

박동미 기자 | 2017-02-17 10:52

‘남자충동’ 20주년 공연서 열연
‘가부장적 폭력’ 실감나게 표현


“튼튼허고 기운 좋은 으른 되라고 할아버지께서 지어주신 이름이여. 이장정! 내가 좋아허는 사람이 있는디 말여. 그기 ‘꼴레오네’여. 영화 대부으 알 파치노여.” 어두운 무대 뒤편에서 어슬렁 걸어 나오더니 ‘대부’ 포스터 앞에 딱 선다. 어스름한 조명 아래 나지막이 첫 대사를 읊었다. 관객들은 그제야 ‘훅’ 숨을 내쉰다.

16일 저녁 서울 대학로 티오엠 1관. 330석 공연장이 오랜만에 만석이다. 바로 이 ‘장정’ 때문. 충무로의 독보적인 개성파 배우 류승범(사진)이 스크린이 아닌, 소극장 무대에 섰다. 1997년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남자충동’(연출 조광화)의 20주년 기념 공연이다. 류승범의 연극 복귀는 14년 만으로, 주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1990년대 초 목포의 낡은 일본식 가옥. 장남 ‘장정’은 가족을 지키고 싶다. 아버지 도박을 끊고 싶고, 어머니 가출을 막고 싶다. 남동생이 여장남자와 살림을 차리는 걸 용납할 수 없으며, 장애가 있는 여동생도 보호해야 한다. 그래서 ‘강한 남자’를 꿈꾸고, 가부장의 권위를 세우려고 한다. 빗나간 판타지다. 이는 폭력으로 구현된다. 아버지의 양손을 절단하고 남동생의 애인을 겁탈하며, 여동생 앞에서 사람을 구타하는 등 비극으로 치닫는다.

공격적인 눈빛과 다부진 몸,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 그리고 주먹을 쥘 때마다 충동하는 폭력. 류승범은 ‘강한 남자’가 되고자 모든 걸 걸다가, 결국 모든 걸 잃는 장정 역에 꼭 들어맞았다. “존경받는 가장! 고거이 내 꿈이여.” “느그들, 이 성 믿고 따를랑가?’하며 툭툭 내 뱉는 대사는 스크린에서처럼 힘이 있었고, 매일 연극을 하는 배우처럼 자신감이 넘쳤다. 14년 만에 오른 무대라는 걸 믿을 수 없을 만큼 몰입도 높은 연기를 펼쳤다. 조근조근 대사를 읊다가, 순간 폭발해야 하는 감정 처리에도 능숙했다. “이 새끼, 집이 잘못 되믄 너 죽을 줄 알어!” 하고 화를 내다가 금세 “달래야이, 성아 금방 갔다오께”하며 살가운 얼굴을 한다. 특유의 유머러스함도 관객들을 즐겁게 했다.

연극은 짜임새 있는 영화처럼 두 시간 내내 지루할 틈이 없고, 장정의 시적인 방백 등 무대에서만 가능한 형태는 극이 고민하고 있는 지점을 더욱 부각 시킨다. 결국 장정의 가족을 통해 사회를 엿볼 수 있는 게 이 연극의 가장 큰 미덕. ‘가부장적 폭력’에 익숙한 사회, 약자를 향한 적대와 곳곳에서 터지는 분열음, 인터넷 대립구도 등 2017년의 한국을 내밀하게 들여다 보는 대에 세기 말의 남자 이야기는 여전히 유효했다. 3월 26일까지. 02-391-8223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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