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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선생님 우리 선생님]

주머니 털어 밥 먹이고 운동복 사주며 ‘레슬링 유망주’로 키워

정유진 기자 | 2015-11-12 14:25

지난 10월 30일 제주 제주시 도평동 남녕고에서 배명환 코치가 레슬링부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남녕고 제공 지난 10월 30일 제주 제주시 도평동 남녕고에서 배명환 코치가 레슬링부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남녕고 제공


제주 남녕고 배명환 코치

“주말 동안 컴퓨터 많이 하면 안 됩니다. 늦게까지 돌아다니면 사고 날 수 있으니까 빨리 집에 들어가야 합니다. 힘내서 월요일에 봅시다.”

지난 10월 30일 제주 제주시 도평동 남녕고에서 만난 배명환(37) 코치는 훈련을 마치고 학생들에게 주말 동안 지켜야 할 수칙들을 일일이 일러주고 있었다. 배 코치는 평일 숙소생활을 하는 학생들이 숙소를 벗어나 긴장이 풀려서 다치거나 문제를 일으키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인지 학생들을 쉽게 집으로 돌려보내지 못했다. 그는 “물가에 내놓은 아이들 같다”며 “돌봐줄 부모가 없는 친구들도 있어서 마음이 쓰인다”고 말했다.

그는 2011년 8월부터 레슬링부 코치를 맡아 어려운 가정환경의 학생들을 유망주로 길러냈다. 배 코치가 지도하는 학생들 상당수는 조손 가정이나 한부모 가정의 자녀들이다. 학생들은 운동에 대한 열정이 가득하지만 기초체력이 부족해 제대로 시합을 뛸 수 없는 수준이었다.

배 코치는 학생들의 체력을 길러주기 위해 식사를 손수 챙겼다. 그는 시합을 앞두고 주머니를 털어 학생들에게 영양 보충을 해주기도 했다. 그는 “레슬링은 맨손으로 상대 선수와 승부를 겨뤄야 하는 스포츠인 만큼 강한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며 “가정에서 체력 관리를 해 줄 없는 아이들은 제가 돌봐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주말 동안 딱히 갈 곳이 없는 학생들을 집으로 초대하기도 하고 경제여건이 어려운 선수에게는 사비로 운동복도 마련해주면서 자식처럼 돌봤다.

배 코치는 2006년 레슬링 명문 경남대를 졸업하고 실업팀 간판선수로 생활하다 잦은 어깨부상으로 선수생활을 접고 남녕고에서 코치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지도자의 길을 걸으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학생들을 최고의 선수로 길러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자신이 이루지 못했던 국가대표의 꿈을 제자들이 이뤄줬으면 마음도 있었다. 그는 “각자의 고민과 사정이 있는 아이들이 레슬링을 통해 스스로 미래를 헤쳐갈 수 있게 돕고 있다”고 밝혔다.

배 코치는 학생들이 연습하는 시간에는 한시도 곁을 떠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조금이라도 실수를 할라치면 곧바로 떨어지는 불호령에 학생들은 한시도 연습을 게을리할 수 없다. 학생들에게 배 코치는 누구보다 무서운 코치다. 하지만 연습시간 외에는 그는 누구보다 친한 친구가 된다. 배 코치는 자신이 아무리 아끼는 물건이라도 학생들이 갖고 싶다고 하면 입던 옷까지 벗어줄 정도로 아낌이 없다. 고민이 있는 학생들과는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 컴퓨터 게임을 같이 할 정도로 살갑게 학생들을 대한다.

남녕고 레슬링부 학생들은 배 코치의 애정과 노력에 보답이라도 하듯 해가 갈수록 전국 규모 대회에서 월등한 성적을 뽐냈다. 지난해 11월 2일 전국체전에서 14년 만에 제주에 고등부 레슬링 금메달을 안긴 고운정(19) 군 역시 배 코치의 ‘애제자’ 중 한 명이다.

배 코치가 지난 2012년 고교 1학년인 고 군을 처음 만났을 때 고 군은 레슬링에 대한 의지와 열정이 강한 학생이었다. 그는 고 군을 체계적으로 훈련시키고 전국 규모의 대회에 닥치는 대로 출전시켰다. 승부욕이 남다른 고 군은 전국 규모의 대회에서 원하는 성적을 얻지 못하면 연습에 더욱 몰두했다. 그럴 때마다 배 코치는 고 군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키가 자신보다 30cm 정도 큰 고 군이 좀 더 효율적으로 연습할 수 있도록 자신의 모교인 경남고에 데려가 원정 연습을 시킬 정도로 열정이 남다른 코치였다. 고 군은 지난 2011년 제40회 전국소년체전 그레코로만형에서 2위에 오르면서 본격적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이어 2012년에는 전국체전 그레코로만형 3위, 지난해 회장기 전국레슬링대회 1위, 같은 해 문화체육관광부 레슬링 선수권대회 2위에 연속해서 오르며 레슬링 유망주로 떠올랐다.

계속되는 우승에 전국체전 금메달까지 바라보던 고 군에게 시련이 닥쳤다. 배 코치는 “전국체전을 10여 일을 앞두고 어머니 없이 홀로 운정이를 키우시던 아버지가 쓰러지셨다”며 “아이에게 시합을 준비하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고 군의 부친은 시합을 일주일을 앞두고 끝내 운명을 달리 했다. 고 군은 상을 치르는 동안 몸과 마음고생이 심했다. 더구나 발인 날이 체중을 측정하는 날과 겹치는 등 완벽한 몸 상태를 만드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배 코치는 상을 치르는 동안 밥 한 숟가락 물 한 모금 제대로 넘기지 못하는 고 군을 알뜰히 챙겼다. 고 군은 시합 출전 여부를 놓고 고민을 하다 배 코치의 응원에 힘입어 결국 출전키로 결심했다.

그는 “운정이의 아버지께서 돌아가시면서 나에게 ‘미안하다. 잘 부탁한다’는 유언을 남기셨다”며 “아버지를 대신해 운정이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빈소를 지키며 훈련을 강행한 고 군은 전국체전에서 금메달을 따고 시상대에 올랐다. 금메달을 목에 건 고 군은 시합 직후 배 고치와 함께 아버지를 모신 제주의 가족묘를 찾아 금메달을 바쳤다. 배 코치는 올해 경남대에 입학한 고 군이 더욱 노력해서 국가대표가 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배 코치는 “코치 생활을 할수록 아이들에게 현재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보다는 스스로 미래를 준비하고 살아갈 수 있게 길을 열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밝혔다. 그는 레슬링을 하는 학생들이 재능과 열정만 있다면 성공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데 앞으로도 꾸준히 노력할 생각이다. 그는 “학생의, 학생에 의한, 학생을 위한 운동 환경 시스템을 구축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제주 = 정유진 기자 yooji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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