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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

韓日 노벨 과학상 ‘0 대 21’ 진짜 이유

기사입력 | 2015-10-08 11:35

오세정 / 서울대 교수·물리학

7일로 끝난 올해 노벨 과학상 수상자 발표도 한국 입장에서는 ‘혹시나’ 하다가 ‘역시나’로 끝났다. 국민이 고대하는 한국인 노벨 과학상 수상자는 없었고, 이와는 대조적으로 일본인 2명, 중국인 과학자 1명이 노벨상 수상자 명단에 추가됐다. 많은 국민이 기분 착잡할 것이다. 하지만 남이 잘되는 것을 보고 배 아파하는 것으로 끝나면 영원히 패배하는 것이다. 우리 나름대로 반성하고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사실 대부분의 노벨상은 연구 결과가 충분히 검증된 이후에 수여하기 때문에, 지금 노벨상을 받는 업적은 수십 년 전에 이뤄 놓은 업적인 경우가 많다. 올해 생리의학상을 받은 오무라 사토시 일본 기타사토대 특별명예교수의 주요 업적 역시 1979년의 것이다. 당시 우리나라는 국제 학술지에 발표되는 논문 수가 모든 분야를 통틀어 100편 안팎이었으니, 이런 상황에서 노벨상에 도전하는 논문이 나오기를 기대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기초연구에 의미 있는 투자를 시작한 것이 1990년대 초이므로 메이지 유신 때부터 꾸준히 기초과학을 지원한 일본과는 최근까지도 상당한 수준 차이가 있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나라도 좀 더 기다리면 일본처럼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쏟아져 나올까? 사실 이에 대한 대답이 긍정적이지 못한 것이 가장 큰 문제다. 현재 우리나라 과학계의 연구 풍토가 대부분 아직도 남을 따라가는 후진적인 모습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어느 나라나 선진국의 문물을 배울 때에는 ‘모방(模倣)’에서부터 시작한다. 우리나라의 경제개발이나 학문 연구도 그랬고, 그동안 매우 성공적으로 선진국을 따라갈 수 있었기에 ‘빠른 추격자’로 불렸다.

문제는, 이제 후진국을 벗어나 선진국이 돼야 하는 때인데도 이러한 패턴이 변하지 않는 데 있다. 한국 기업들은 후진국 기업들이 따라오는 데도 자신들만의 모델을 만들지 못하고 있고, 학자들도 선진국 학자들이 가지 않는 자기만의 길을 찾기를 두려워하고 있다. 그런데 노벨상은 철저히 ‘세계 최초’의 발견자에게 주는 상이라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지 않는 한 노벨상을 타기는 어렵다.

게다가 정부의 정책이 이런 풍토를 오히려 강화해주고 있다. 연구비를 배분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은 논문 수와 인용된 횟수 등이다. 그런데 논문을 유명 학술지에 쉽게 출판하고 인용된 횟수를 많게 하기 위해서는 최근 유행하는 연구 분야에서 일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그런 분야에는 연구자도 많고 논문도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그 반면, 남이 하지 않는 분야를 새로 개척하면 그 분야가 확립될 때까지 이런 계량적 지표에서 손해를 보게 마련이다. 일본의 경우는 그나마 한 우물을 파는 장인(匠人) 전통이 있어서 한 분야 연구에 일생을 바치는 과학자도 있지만, 한국에서는 그마저 흔하지 않다. 여기에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을 흔들어대니 학자들이 긴 호흡으로 연구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특히, 최근에는 단기적인 성과를 강조하면서 장기적인 기초연구에 대한 관심이 줄었다.

이렇게 가서는 미래의 지식기반사회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단순히 일본과의 자존심 싸움 문제가 아니라, 진정으로 독창적인 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와 여건을 마련해 주는 일이 절실한 것이다. 한·일 간 ‘0 대 21’이라는 노벨상 수상자 수가 우리 사회에 커다란 경종(警鐘)을 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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