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47년째 축산업 외길을 걸으며 대기업을 일군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이 지난 4월 30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판교로 NS홈쇼핑 집무실에서 고난과 역경을 극복한 과정, 도전정신의 중요성, 글로벌 곡물전문기업으로의 도약을 위한 포부를 밝히고 있다. 성남=정하종 기자 maloo@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

부침을 거듭해 온 파란의 한국 재계사에 또 하나의 기록이 쓰여지고 있다. ‘병아리 10마리’를 키워 이젠 자산 5조 원 대기업집단 진입을 눈 앞에 둔 자수성가 최고경영자(CEO)의 탄생, 김홍국(58·사진) 하림그룹 회장을 두고 하는 말이다. 대기업집단이란 흔히 ‘재벌(財閥)’을 일컫는데 김 회장이 당당히 자리를 함께하게 된 것이다. 그는 지난해 11월에는 모나코 왕실이 경매로 내놓은 나폴레옹(1769∼1821·프랑스 황제) 모자를 26억 원을 주고 사들이며 도전 정신을 강조해 또 한 번 화제를 불러 모은 바 있다.

지난 4월 30일 오후 경기 성남시 분당구 판교로 NS홈쇼핑 빌딩의 집무실에서 김 회장을 만났다. ‘개천에서 용이 나오기 더욱 어려워졌다’거나 안정 추구의 실리 때문에 젊은 청춘들이 공무원 시험에 목을 매고 창업 의지는 갈수록 퇴색해지는 요즘, 그의 오뚝이 같은 성공의 뒷얘기와 비결이 다시 한번 여럿에게 귀감이 될 수 있다고 떠올린 게 인터뷰 요청의 배경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열정이 넘치는 강의에 경도된 느낌이었다. 성공한 기업인은 역시 범인(凡人)들과 뚜렷한 차별성을 지니고 있었다.

하림 하면 닭고기가 떠오른다. 김 회장 집무실에는 닭 모양의 그림, 마스코트가 그를 에워싸듯 구석 구석 포진해 있었다.

“하하, 저를 찾는 지인들이 선물이라며 갖고 온 게 많아요. 국민학교 4학년 여름방학 때 외갓집에 놀러 갔다가 외할머니에게서 병아리 10마리를 선물받은 게 기업의 초석이 된 게 사실입니다. 잘 키웠더니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사업자 등록을 해야 할 정도로 커졌어요. 병아리 10마리 모이를 줄 때 하림그룹을 생각했겠습니까. 하지만 100마리가 되니 1000마리를 키워봐야겠다, 그리고 돼지도 키워 봤으면 하는 생각으로 꿈이 커진 거지요. 축산을 하니 가공도 해봐야겠다고 점점 포부를 넓힌 거지요.”

김 회장의 홈페이지에는 ‘안전지대를 떠나라, 인생은 도전하는 것이다’란 생활신조이자 철학이 실려 있다. 안주를 경계하는 말이다. 늘 품는 생각과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창의적 발상도 ‘점프 업’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그는 “난 끊임없이 15도의 경사길을 궁리하면서 간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았는데 남들보다 한 발 앞서 창의적으로 떠올린 구상들이 대부분 맞아떨어졌다”고 했다. 고통도 어려움도 끊임없이 찾아왔지만 가장 좋은 극복의 무기는 인내였다고 한다.

맨 밑바닥에서 오늘의 하림그룹을 일구기까지 김 회장에게는 큰 시련이 3번 찾아 왔다. 21세 때 축산물 파동으로 재기 불능 상태로 떨어졌고 한국 기업인들의 태반을 수렁으로 몰아 넣었던 1997년 말 외환위기 때는 부도 직전까지 내몰렸다. 불과 수년 후에는 그야말로 ‘쌍끌이’ 리스크(위험)가 한꺼번에 왔다. 그가 가장 큰 난관으로 기억하는 고비다. 2003년에는 공장 대화재에 조류인플루엔자까지 겹쳤다.

“홈쇼핑을 창업하고 제일사료를 인수해 현금이 없던 상황이었는데 두 가지 악재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몰아쳤어요. 뼛속까지 사무칠 정도로 어려움과 위기를 극복하면서 느낀 게 있어요. 인내, 창의력, 겸손, 성숙을 배우고 익힌 거지요. 지금까지 축산업을 외길로 47년을 걸어 왔는데 후회는 없습니다. 숙명이라고 생각해요. 제 적성에 맞는 일을 한 게 성공의 토대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회사에 강조하는 인사 철학이 바로 적성과 훈련입니다.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 주면 일 자체가 즐겁거든요. 지켜 보세요. 제가 죽을 때까지 이 일만 할 겁니다.” 실제 드라마 같은 성공 일대기를 써온 그에게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국회의원 영입 등의 제의가 있었지만 모두 고사했다고 한다.

하림그룹의 국내 자산은 4조8000억 원, 법인 수는 국내외를 통틀어 85개, 임직원은 1만1000여 명에 달한다. 사업 영역도 축산, 사료, 유통판매, 도축가공, 해외사업, 식품제조로 커졌다. 하루 가공되는 닭이 93만2000마리, 연간 도축돼지는 96만5000마리, 연간 사료생산량은 400만8300t. 모두 각 부문 국내 1위다.

김 회장은 최근 또 한 번의 승부수를 던졌다. 바로 1조80억 원의 입찰가격을 써낸 해상운송업체 팬오션 인수다. 변수가 없다면 6월에는 인수가 마무리된다. 주변에서는 ‘모험이 아니냐’며 우려의 시선도 던진다. 하림은 독점적인 육계시장 장악력과 안정적 수익구조를 지니고 있다. 무리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에게 팬오션 인수는 어떤 의미일까.

“팬오션 인수는 본격적으로 하림을 글로벌 시장에서 곡물을 소재로 한 사업에 시동을 걸어 곡물 전문기업으로 키우겠다는 각오로 보면 됩니다. 곡물 사업의 핵심이 선박이거든요. 하림의 시너지 외에도 국내 현실을 돌이켜 보면 꼭 필요한 사업입니다. 우리나라 곡물 자급률이 24%밖에 안 됩니다. 국제 곡물 유통에 문제가 생기면 식량 안보로까지 연결됩니다. 태양에너지의 줄기로 식품, 가축, 수산물, 섬유, 에너지가 모두 곡물에서 나옵니다. 팬오션 인수를 통해 곡물 구입, 운반부터 축산, 가공, 유통에 이르는 사업구조를 갖추고 에너지사업을 추진할 겁니다.”

그는 이 사업의 모델로 연 매출 140조 원에 달하는 미국의 카길사(미국 미네소타주에 있는 세계 최대 곡물·식품업체)를 꼽았다. 카길은 곡물 회사이지만 구성을 보면 500∼600척의 선박을 운영하는 선박회사이자 에너지 회사다.

김 회장은 10년 전부터 곡물을 토대로 한 기업 운영의 꿈을 품었는데 해운사가 없던 차에 팬오션이 마침 매물로 나왔고 인수 카드를 꺼내게 됐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그는 “제 생각이 대중적이라면 성공할 수 있었겠어요. 남이 안 하는 것, 못하는 것을 해왔으니까 가능했겠지요”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팬오션 인수가 마무리되면 하림그룹의 자산총액은 5조 원을 넘어 대기업집단이 된다. 2018년 3월까지 채무보증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 상호출자와 채무보증에 제한을 받는 등 각종 규제에도 묶이게 된다. 대기업 반열에 올라서지만 책임도 무거워지는 셈이다.

김 회장은 “우리나라가 각종 규제는 물론,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의 차별적 규제가 많아서 그런지 성취감보다는 부담을 더 많이 느낀다”며 “주변에서는 축하한다고 하는데 축하받을 일인가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다른 기업들도 다 해왔는데) 못할 거 있겠느냐는 각오도 다지게 된다”고 ‘소감’을 피력했다.

비약적 성장을 하는 하림그룹에 과거 숱하게 명멸했던 기업들의 사례를 열거했다. 그는 이를 잘 알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항상 경계하고 있다고 했다.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면 판단이 흐려지죠. 저희가 진취적 자세와 빠른 속도로 성장을 해오면서도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게 재무구조예요. 부채비율을 100%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팬오션 인수 후에도 마찬가지고요. 과거의 다른 기업들하고는 다르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어요.”

세간의 주목을 받은 나폴레옹 모자 구입 얘기를 다시 한번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김 회장의 ‘철학’을 관통하는 키워드로 생각됐기 때문이다. 이 모자는 올 하반기에 경기 성남시 분당구 삼평동 NS홈쇼핑 복합건물에 1년간 전시된 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 신사옥으로 옮겨 일반인에게 공개할 계획이라고 했다.

“제가 중학교 때 나폴레옹 황제 전기를 읽고 난 후 감탄을 했습니다. 지중해 코르시카 출신의 섬 사람이 35세에 황제에 올랐고 지금도 유럽에서는 최고의 인물로 추앙을 받고 있잖아요. 우리 사회나 젊은이들의 생각이 점점 부정적인 기류로 바뀌는데 이 모자를 통해 도전과 긍정적 사고를 키워줄 수 있다면 그 또한 제가 할 수 있는 기부활동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인터뷰 = 이민종 차장(경제산업부) horiz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