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 로고


통합 검색 입력
전체
영화
가요
방송·연예
[윤석진 교수의 드라마 세상]

가족사로 풀어낸 분단 현실

기사입력 | 2015-02-25 15:13

스파이


냉전시대의 종식에도 불구하고 한반도는 여전히 세계의 화약고이다. 하지만 21세기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남과 북의 군사적 대치 상황은 오히려 너무 익숙해 별다른 긴장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전쟁에 대한 공포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남한과 북한의 군사적 대치는 우리 사회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처럼 여전히 현실 정치에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KBS 2TV 금요 미니시리즈 ‘스파이’는 분단 현실의 폐해를 가족사에 집약시켜 남과 북의 군사적 대치 상황을 새롭게 풀어낸 드라마이다.

사랑하는 아들이 국가정보원 요원이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한 채 지극히 평범한 어머니의 일상을 살아가던 박혜림(배종옥)은 북한 정보원 출신이라는 신분을 속이고 남한에 정착한 특이한 이력의 여성이다. 27년 전 중국 선양(瀋陽)에서 스파이 활동 중에 공작 대상이었던 김우석(정원중)을 사랑하게 되면서 정체를 감추고 살아가던 박혜림은 27년 만에 자신을 찾아온 북한 노동당 대외연락부 소속의 공작원 황기철(유오성)로부터 아들 김선우(김재중)를 포섭하라는 협박을 받게 된다. 그녀는 아들 대신 자신이 직접 나서겠다며 황기철을 설득하면서 빠져나올 수 없는 수렁으로 빠져든다. 그 누구보다 어렵게 이룬 가족을 지키기 위해 그토록 감추고 싶어 했던 스파이로 나서야 하는 박혜림과 그녀의 가족이 감내해야 하는 아픔과 고통은 개인의 일상을 지배하는 분단 현실의 참상과 다름없다.

너무 익숙해 문득 잊고 있는 분단 현실의 폐해는 개인의 일상을 파괴할 정도로 위력적이다. 국정원 현장 요원이었다가 작전 실패 후 대북정보분석팀 소속으로 일하고 있는 김선우는 어머니가 북한 보위부 최고 공작원 출신이었고 최근 자신을 위해 다시 스파이 활동에 나선 것을 알게 되면서 충격을 받는다. 그는 국정원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거나 자신의 스파이가 돼 도우면 어머니와 관련된 모든 자료를 없애고 다시는 나타나지 않겠다는 황기철의 제안을 받고 갈등에 빠진다.

박혜림과 김우석이 어렵게 이룬 가정은 분단 현실의 축소판이다. 북한 정보원 출신의 어머니와 IT 보안업체 간부인 아버지 그리고 “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하며 가족에게조차 직업을 숨기고 생활하는 국정원 요원 아들과 어머니가 짜놓은 빈틈 없는 공부 스케줄에 진저리를 치면서도 그 누구보다 가족을 사랑하는 평범한 여고생 딸로 이뤄진 가족 관계에서 군사적 대치 상황에서도 통일을 지향해야 하는 남한과 북한의 정치 현실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분단 현실은 ‘가족’과 ‘첩보’의 장르적 특성이 결합된 ‘가족첩보드라마’라는 새로운 장르드라마 탄생의 모태가 되었다. 탄탄한 스토리와 뛰어난 작품성을 인정받아 영국 가디언지가 “2014년 당신이 놓치면 안 되는 세계 드라마 6편” 가운데 한 편으로 선정한 이스라엘 드라마 ‘마이스(MICE)’를 원작으로 하고 있지만,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남한과 북한의 특수한 정치적 환경이 원작과 다른 또 다른 재미를 느끼게 한다. 반공드라마의 틀에 갇히지 않고 가족이라는 일상의 미시 담론 속에 분단 현실을 녹여냄으로써 새로운 장르드라마를 개척한 것만으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 드라마의 상투성과 진부함에 질린 시청자라면 한 번쯤 눈여겨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충남대 교수·드라마평론가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많이 본 기사 Top5

핫클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