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ke fashion not war(전쟁 말고 유행을 만들자)’ ‘Tweed is better than tweet(트위트보다 트위드가 좋아요)’ 매 시즌 기발하게 컬렉션을 발표하는 샤넬. 전세계 럭셔리 브랜드의 대명사인 샤넬이 이번에도 일(?)을 냈더군요. 지난 10월 초 파리패션위크에서 열린 2015년 봄·여름 컬렉션 패션쇼에서 말입니다.

지난 2014년 가을·겨울 런웨이 위에 슈퍼마켓을 통째로 올려놓더니 이번엔 오래된 아파트와 회색 거리를 펼쳤습니다. 이 거리를 시위대로 변신한 늘씬한 여성 모델들이 점령했고요. 일주일에 한번 데모가 있다는 파리여서일까요. 의외로 그 모습이 잘 어울립니다.

모델들이 들고 나온 피켓은 더욱 흥미롭습니다. 반전주의 슬로건 ‘Make love not war(전쟁 말고 사랑을 하자)’에서 영감을 받은 문구나, 트위트와 샤넬의 트레이드 마크인 트위드(굵은 양모를 사용한 스코틀랜드산 모직물) 재킷을 비교한 것도 재치 있습니다. 파격적이고 유머, 위트있는 쇼 정도로 치부될 수 있지만, 시위 형태의 이 런웨이는 샤넬만의 철학과 정체성을 오롯이 담고 있습니다. 그것은 세월이 흘러 트렌드와 디자이너가 바뀌어도 절대 변하지 않는 창작의 원천이지요. 예컨대 트위트보다 ‘나은’ 트위드는 일명 ‘샤넬 재킷’이라고 불리는 다소 오래된 옷으로, 1950년대 가브리엘 코코 샤넬은 여성들의 ‘불편한 스타일’을 바꾸기 위해 첫선을 보였지요. 활동성과 우아함을 모두 갖춰 ‘혁명적인 옷’으로 평가받습니다. 또 남성 중심 언어 문화를 꼬집는 ‘History is her story(역사는 그녀의 이야기다)’ 유엔 양성평등 캠페인 ‘He for she(여성을 위한 남성)’ 등은 이 브랜드가 여성의 의류사적‘해방’을 일으켰고, 여전히 여성만을 위해 존재함을 강하게 어필했습니다.

샤넬의 내년 봄·여름 패션쇼는 지난 22일 막을 내린 서울패션위크를 돌아보게 합니다. 서울컬렉션의 옷들은 매우 트렌디했고, 한류 스타들의 열광적인 지지로 인해 아시아는 물론, 금세 세계 시장으로 팔려나갈 기세였습니다. 그러나 뚜렷한 철학과 기발한 상상력을 보여주는 디자인과 쇼는 드물었습니다. ‘달밤 패션쇼’의 개발, 안정적인 행사 운영 등 예년에 비해 호평받는 패션위크지만, 창의력 부분에 있어서 아쉬움이 짙게 남습니다.

패션쇼는 한때 상류층만 향유하던 문화였습니다. 그러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유튜브 등을 통해 지금은 일반에 100% 공개되고 있습니다. 메시지가 중요해진 거지요. 사람들은 샤넬의 옷을 살 수는 없어도 이 재미난 쇼를 보고 즐거워합니다. SNS에 올라온 피켓 문구를 읽고 ‘좋아요’를 누르고요. 패션쇼 자체가 하나의 대중문화 콘텐츠가 된 겁니다. 한류와 SNS를 활용해 ‘K-패션’을 전파하려는 디자이너들이 주목해야 할 대목입니다. 이 콘텐츠의 질은 브랜드가 지닌 철학과 상상력의 크기에 비례할 거고요. 흠, 과한 욕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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