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시즌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 상금랭킹 1위를 달리고 있는 이보미 선수가 26년 동안 살아오면서 가장 큰 슬픔에 빠졌습니다. 암 투병중이던 아버지 이석주 씨가 지난 14일 새벽 딸의 손을 꼭 잡은 채 57세의 나이로 운명했습니다.

사실 이보미는 전날까지 메이저대회인 JLPGA선수권대회에 출전해 대회2 연패를 향해 순항하며 3라운드 중간까지 3위를 달리고 있었지만 11번홀에서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에 공을 집어들고 곧바로 귀국해 강원 춘천의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이 대회에서 37년 만에 2년 연속 우승에 도전했던 이보미의 기권에 일본 언론들도 ‘이보미가 부친 위독 소식을 듣고 급거 귀국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보미는 실력뿐 아니라 깜찍한 외모에다 늘 미소 띤 환한 얼굴로 일본 공중파방송 예능프로에도 자주 출연할 만큼 인기가 높습니다. 부음 소식을 접한 일본팬들도 이보미의 홈페이지에 애도의 글을 남기며 아픔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보미는 이번 대회 직전 짬을 내 병원에 들러 아버지를 찾았고, 당시만 해도 병세가 급격히 악화될 것으로는 상상도 못했다고 합니다. 오히려 이 씨는 딸에게 “엄마 말 잘 듣고 올해 꼭 상금왕을 하라”고 당부했는데 결국 유언이 됐습니다. 사경을 헤매던 이 씨는 딸이 중환자실에 도착하자 반갑다는 표시로 눈을 껌벅였고, 딸의 손을 꼭 잡은 지 1시간여 만에 눈을 감았다고 합니다. 이 씨의 타계 소식에 충북 음성에서 열린 YTN·볼빅여자오픈에 출전했던 동료 선수들과 선수 부모 상당수가 달려와 함께 슬퍼했습니다.

이 씨는 딸이 초등학교 5학년 때 잠재력을 보고 골프에 입문시켰고, 지금까지 프로골퍼 이보미를 있게 한 스승이자 정신적인 지주였습니다. 강원 인제 원통초교에서 골프채를 처음 잡은 이보미는 아마추어 신분으로 한국여자오픈골프대회 준우승을 거두며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했습니다. 이 씨는 딸이 2008년 프로로 전향한 후 이듬해 넵스 마스터피스에서 첫 승을 달성하기까지 늘 함께했고, 호주 동계 훈련 때는 뙤약볕에서도 딸의 훈련을 독려했습니다. 때론 운전기사로, 때론 매니저로 딸의 성공을 돕는 억척스러운 한국 아버지의 전형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이 씨는 헌신적인 뒷바라지로 딸의 성공을 지켜보며 ‘고생 끝 행복 시작’이 되려는 찰나 몸에 이상이 왔습니다. “괜찮다”며 한참동안 병을 숨기던 이 씨는 딸의 성화에 못이겨 병원에 갔을 때는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병원에서조차 수술할 수 없을 만큼 말기였고, 시한부 판정을 받고 투병중이었습니다.

16일 장례식을 마친 이보미는 가족과 상의한 다음 일본 무대로 돌아갈 예정이라고 합니다. 아직 JLPGA투어는 올시즌 11개 대회가 남아 있어 그의 목표이자 아버지가 유언처럼 시즌 5승을 거둬 상금왕이 되기 위해 몸을 추스르겠다고 합니다. 미소천사 이보미가 다시 환하게 웃는 날이 돌아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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