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시가는 보통 토치로 불을 붙이는데, 이때 끝 부분 약한 불을 이용해야 한다. 시가는 연기를 삼키지 않고 뿜어내기 때문에 일반 담배보다 유해물질 흡수가 적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천연재료를 많이 사용한 고급 시가일수록 타르 등 발암물질 함유량도 현저히 떨어진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한 시가바에서 손님들이 여유 있게 시가를 즐기고 있다. 의상·촬영협조 = 조르지오 아르마니·알프레드 던힐 정하종 기자 maloo@munhwa.com

지난 3일 오후 8시 서울 용산구 소월로(이태원동)의 시가바(cigar bar), 범상치 않아 보이는 중년 남성 두 명이 들어왔다. 손에는 오토바이 헬멧이 들려 있었다. 둘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한 뒤 구석 소파에 앉아 시가에 불을 붙였다. 허공에 흩뿌려지는 연기 속에서 담소가 시작됐고 훌쩍 1시간이 흘렀다. 가게를 나서는 그들에게 물었다. “왜 시가바에 오는 것이냐.”

최모(42) 씨는 “유학생활 중에 시가를 배웠다”며 “향이 좋고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한 달에 2∼3번 찾는다”고 했다. 김모(52) 씨는 “얼마 전 옆에 있는 최 교수를 따라 와 피워봤는데 중후한 맛이 좋아 다시 따라오게 됐다”고 말했다.

알고 보니 둘은 같은 대학 동료교수였다. 이들은 40∼50대의 나이, 교수 직함을 가진 사람과는 어울리지 않을 법한 노란색 할리데이비슨과 검은색 야마하 볼트를 타고 떠났다. 목적지는 거주지인 송파구 잠실. 둘은 오직 시가를 피우기 위해 30분을 달려 이곳에 왔던 것이다.

최근 유학생, 전문직 남성들을 중심으로 시가바를 찾는 발길이 늘고 있다. 국내에서는 ‘상남자’의 표상으로 여겨지는 남미(南美)의 혁명가 체게바라가 문학만큼 사랑했던 시가. 남성들은 그 멋과 맛, 낭만 그리고 약간의 허세를 즐기기 위해 시가바 문을 두드린다.

이날 방문한 시가바에는 3시간 동안 교수 2명을 비롯해 3개 팀이 왔다 갔다. 부서 회식에서 술을 조금 걸치고 온 ‘컨설팅 회사’팀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부사장, 팀장, 사원이라는 엄연한 위계질서가 있었지만, 소파에 기대어 시가를 태우는 그들의 모습은 꽤 자유로워 보였다. 양주 한 모금과 연기 한 모금, 직장인 남성의 ‘우아한’ 놀이터 같은 느낌이었다. 유모(37) 씨는 “유학할 때 시가를 피우기 시작했고, 혼자서도 가끔 피우러 이곳에 온다”고 말했다.

이 시가바를 운영하는 ‘피에르 시가’의 장철웅 영업팀장은 “하루에 10개 팀 정도가 방문하는데, 30대부터 60대까지 연령층이 다양하고, 그 수가 조금씩 늘고 있다”며 “낮 동안은 시가를 사가는 고객이 많고, 밤에는 여기 머물면서 피우고 가는 분들이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유학, 주재원 등 외국서 경험하고 찾는 경우가 많고, 담배를 피우지 않고 시가만 즐기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고 덧붙였다.

시가바의 풍경은 복잡하지 않았다. 커피, 와인, 위스키 등을 판매하는 바가 있고, 널찍하게 떨어진 소파들, 그리고 한 구석에 시가 보관소가 있다. 시가 보관소는 와인 보관소와 유사하게 유리벽으로 돼 있어 쭉 배열된 시가들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시가 잎들이 마르거나 갈라지지 않도록 내부 습도는 70∼80%로 유지된다. 마실거리를 주문한 뒤 보관소에서 원하는 시가를 골라 소파에 앉아 불을 붙이면 끝. 참 쉽다.

일반적으로 시가는 5장의 담뱃잎을 겹쳐 말아놓은 것이다. 각 잎의 역할은 다르다. 겉면을 감싸는 담뱃잎은 포장 용도로 특별히 얇게 재배한 것을 쓴다. 가장 안쪽에 들어가는 잎 3장은 향, 맛을 내고 불이 잘 붙게 하는 역할을 한다. 4번째 잎은 형태를 잡아주는 기능이다.

담배는 생산 과정에서 타르 등 물질이 들어가지만 시가는 잎으로 돼 있기 때문에 니코틴만 있다. 다만, 니코틴이 담배보다 훨씬 많이 함유돼 있다는 점은 알아둬야 한다. 시가의 원산지는 주로 쿠바와 도미니카인데, 쿠바는 자국에서 생산하는 담뱃잎으로만 만들고, 도미니카는 전 세계 담뱃잎을 모아 배합하는 것이 특징이다.

시가는 끝을 커터로 자른 후 토치로 불을 붙이면 20분∼1시간가량 유지된다. 담배는 마실거리를 주문한 뒤 피우면 오기 전에 끝나 버리겠지만 시가는 충분한 여유가 있다.

또한 시가는 제품 브랜드, 길이, 굵기, 맛, 향에 따라 그 종류가 쿠바산만 해도 300종이 넘을 만큼 다양하다. 가령 굵기에 따라서는 코로나(corona), 로부스터(robusto), 피구라도(figurado) 등으로, 향으로는 spicy(톡쏘는향), vegetal(풀 향), earthy(흙향), woody(나무향) 등으로 구별된다. 마실거리가 달라지면 같은 시가라도 풍미가 또 다르다. 골라 피우는 재미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시가와 시가바는 한국에서 대중화돼 있지 않은 게 사실이다. 일본과 필리핀 등에서는 길을 걷다 보면 시가를 입에 물고 망중한을 즐기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지만, 국내에서는 정말 어렵게 볼 수 있다. 시가바는 서울 이태원과 삼성동, 경기 성남, 부산 그리고 일부 특급호텔 등에만 있다. 이에 대해 피에르 코엔-아크닌 ‘피에르 시가’ 대표는 “한국은 빠른 것을 좋아하는 문화가 있어, 여유와 휴식을 상징하는 시가가 해외보다 인기가 없는 것 같다”고 했다. 또 “유난히 싼 국내 담뱃값(2500원)에 비해 가격이 1만∼3만 원 정도로 비싸기 때문에 접근성이 낮다”고 말했다. 아직 고급문화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시가 문화를 찾는 이들의 발길은 꾸준하다. 시가바에서 만났던 유 씨의 말이 대답이 될 수 있을 듯하다. “꼭 돈이 많은 사람들이 피우는 것이 아닙니다. 가격은 중요하지 않아요. 소주 10병을 마시느냐, 시가 1개를 피우느냐는 자신이 어디에 더 가치를 두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게 아닐까요.”

유민환 기자 yoogiz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