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허판 중국사회과학원 세계경제정치연구소 부소장은 지난해 12월 24일 인터뷰에서 한·중·일 관계와 관련해 “‘대국은 관대함으로 소국을 대하고 소국은 지혜로 대국을 대해야 한다’는 맹자의 메시지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우리 속담이 있다. 먹고사는 문제가 모든 것의 근본이라는 말이다. 국제정세 역시 마찬가지다. 국제사회 각국의 역사적, 종교적 성향들이 중요하긴 하지만 각국의 이익만큼 국제정세를 움직이는 데 중요한 요소도 드물다. 아시아태평양을 중심으로 한 2013년의 세계 각국은 어떤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며 움직일까.

허판(何帆·42) 중국사회과학원 세계경제정치연구소 부소장은 이 질문에 답을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중국 전문가 중 한 명이다. 경제를 중심으로 국제정세 변화를 관찰해왔다. 그는 중국 런민(人民)은행 환율조정에 자문을 하는 실무형 학자다. 지난해 12월 24일 베이징(北京) 사회과학원에서 만난 허 부소장은 시종일관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질문에 답했다.

허 부소장은 “단기적 관점에서 미국 경제회복을 점치며 유로존 위기심화를 우려한다”고 말했다. 특히 지난해 12월 19일 대선 이후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 대한 중국의 기대가 높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대선이 끝났다. 국제시장에서 한국 차기 정부의 역할에 대한 평가는.

“한국에 최근 세계가 주목하는 일들이 많았다. ‘강남스타일’부터 삼성의 스마트폰까지, 현대자동차 역시 잘 하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삼성은 분명 소니를 추월했다. 이런 한국을 새로 이끌 여성 대통령의 역할이 기대된다. 특히 중·한 관계는 분명히 좋아질 것으로 본다.”

―미국 버락 오바마 2기행정부 때 미·중 관계에 어떤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나.

“미국의 아시아 중시 정책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호주, 한국, 일본과의 전통 우방 관계를 강화시키는 한편, 중국과의 관계는 밀접해지면서 마찰이 늘어나는 곳이 있고 또 관계가 더욱 긴밀해지는 곳도 있을 것이다.”

―중·미 간 갈등이 더 첨예해진다는 의미인가.

“전반적 기조를 보면 오바마 정부는 중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려고 한다고 할 수 있다. 실제 전(前) 집권기간에는 비교적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향후 어떨지는 두고 봐야 한다. 전 집권기간 미국 내에서 오바마 행정부가 중국에 너무 양보한다는 비판이 많았고 따라서 집권 말기에 마찰이 늘었다. 이런 미국에 비해 중국은 미국과 적극적으로 관계를 개선하려 노력하고 있다. 시진핑(習近平) 총서기는 이미 수 차례에 걸쳐 중·미 관계를 중시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미국이 소극적이어서 우려된다. 특히 오바마 재집권기간 실질적 양국 관계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중국은 뜨겁고, 미국은 냉정하다. 미국의 태도가 바뀌는 게 중요하다.”

―유로존 위기는 어떻게 보나.

“유로존에 처음 문제가 발생했을 때 모두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한 문제를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가 나왔다. 현재 유럽은 잠시 이 문제에 있어 안정을 찾은 모양새다. 그러나 미국 경제의 단기적 회복은 유로존에 재앙이 될 수도 있다. 국제 자금이 유로존을 떠나 미국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유로존은 더욱 긴밀한 국가 간 협조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위안화 국제화를 통한 금융패권국 추구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중국의 위안화 국제화는 미국 달러의 패권지위를 노리는 것이 아니다. 중국은 미국 달러 역할이 과거와 달리 온전치 않다고 본다. 중국은 막대한 미국 국채를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 달러가치가 계속 하락하고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모든 나라들이 미국 달러의 최근 현상에 우려를 하고 있다. 미국채권을 많이 보유한 중국은 좀더 조급한 것뿐이다. 그래서 위안화 국제화는 위안화가 국제 무역에 더 많이 이용되도록 노력해 달러의 미흡한 점을 보완하려는 것이다. 그럼에도 위안화가 달러처럼 된다는 것은 아직 요원한 일이다. 차이가 크다.”

―시 총서기가 집권 초 경기부양을 위해 투자를 크게 늘리는 재정정책을 펼 것이란 관측이 있는데.

“재정정책으로 투자를 늘리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사실 서구 사회에서 그런 기대가 많은데 이는 중국 경제가 경착륙을 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그러나 그 전망은 맞지 않는다고 본다. 원래 중국 경제가 과열됐다. 그래서 과거와 같은 고성장은 하기 힘들다는 게 중국의 생각이다. 적극적인 재정정책은 감세방면에서 나올 것이다. 최소한 투자성 재정정책은 아니다. 투자실패에 대한 우려도 있고, 경기가 또 과열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경기부양책이 나오더라도 감세정책 등과 조화를 이룬 것일 것이다.”

―중국 경제의 불투명성이 향후 중국 경제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시각도 많다. 만약 중국 경제에 문제가 생긴다면 어디라고 생각하나.

“중국 회계와 통계의 질은 개발도상국 중 상급이다. 물론 노동시장 등 통계 신뢰도가 떨어지는 곳도 있다. 그러나 그런 시각은 중국을 제대로 이해한 것이 아니다. (성장기) 통화팽창에 관대한 정책을 펼쳤던 탓에 생긴 경기 과열 부분이 우려된다. 또 장기적으로 중국 산업구조 문제는 반드시 중국이 해결해야 할 문제다. 현재 중국은 투자는 높고 소비가 낮다. 또 제조업 경쟁력은 있지만 서비스업의 경쟁력이 너무 떨어진다는 점이다. 그래서 현 지도부가 적극적으로 산업구조 개혁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중국 신 지도부는 분배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분배와 성장은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본다.

“중국의 현재 관심은 경제성장의 속도가 아니다. 주민의 복지 수준을 높이는 게 더 관심이다. 과거 국가 경제발전 속도는 빨랐지만 주민수입 수준은 여전히 낮았다. 그래서 지금같이 국내 소비가 낮은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이에 중국 경제 발전이 문제가 아니라 주민소득을 높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이것이 중국의 경제 발전에 더 이롭다고 생각한다.”

―북한이 최근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했다. 북한 현 정권에 대한 평가는 어떤가.

“중국이 가장 바라는 것이 북한의 안정이다. 불안이 생기면 전 지역, 전 국제사회에 충격이 될 수 있다. 주변국 모두가 이를 막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한다. 국제 사회는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는 과정에서 중국이 북한의 뒤를 봐주고 있다고 보는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은 틀린 관점이다. 중국이 그간 6자회담 등 북핵협상을 주도해온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북한이 중국의 말을 무조건 따르도록 할 수는 없다. 북한이 말을 듣도록 하는 데는 한국, 일본, 러시아 등 관계국의 협조가 필요하다. 그래야 좀더 북한을 바꿀 수 있다고 본다.”

―북한은 황금평 개발 등에 중국 기업의 투자를 유치하려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2013년 중국 기업의 투자가 이어질 것으로 보나.

“북한의 개혁개방 의지가 문제다. 개혁개방은 국제정세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중국이 그랬다. 덩샤오핑(鄧小平)은 개혁개방에 앞서 국제정세를 ‘안정적 상태’라고 판단했다. 경제발전을 하기 위한 적기로 본 것이다. 북한은 스스로가 세계를 믿지 못하고 있다. 그런 북한 역시 세계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중국 기업들이 북으로 갈까. 답은 모른다. 북한에 대한 투자는 분명 이익이 클 수 있다. 문제는 투자환경이다. 정치상 안정이 문제다. 북한이 약속하는 각종 혜택이 중국 기업을 유혹할 수 있을지는 부정적이다.”

―2012년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불안과 갈등의 한 해였다. 2013년 이런 갈등이 해소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중국, 한국, 일본 삼국 간 협조가 제일 중요하다. 이들 국가들이 사이가 나빠지면 지역 불안이 더욱 커진다.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 상황을 보더라도 그렇다. 역시 현재 삼국 간 사이가 나쁜 것을 이용한 것이다. 특히 한국의 역할이 중요할 수 있다. 한국은 중국, 일본, 러시아 모두와 관계가 좋을 수 있다. 중·일 관계가 나쁜데 일본측이 원인을 제공한 면이 있다. 일본의 우경화는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물론 중국 역시 개선할 부분이 있다. 이들 지역에는 역사적 문제가 있는데 역사문제는 관점이 중요하다. 지난 100년만 보면 일본의 아시아 침략으로 누구도 일본을 좋아할 수가 없다. 그러나 1000년간 아시아 역사를 보면 사이가 좋았을 때도 많다. 당나라 때 많은 일본 유학생들이 있었다. 중·일 양국 모두가 태도변화가 필요하다. 맹자의 ‘유인자, 위능이대사소, 유지자, 위능이소사대’(惟仁者, 爲能以大事小, 惟智者, 爲能以小事大: 대국은 관대함으로 소국을 대하고 소국은 지혜로 대국을 대해야 한다)라는 말을 이 순간 되새겨볼 만하다.”

글·사진 = 베이징 박선호 특파원 shpar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