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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1 좌천(左遷)-9

기사입력 | 2012-11-14 14:31

“아빠, 회사 끝났어?”

집안으로 들어선 서동수에게 미혜가 달려와 안기면서 물었다.

“어, 그래.”

번쩍 안아든 서동수가 미혜에게 곰인형을 안겨주었다. 오후 5시 반, 박서현은 주방에서 이쪽에 등을 보인 채로 저녁 준비를 하고 있다.

“야, 이뻐. 너무 좋아.”

곰인형을 안은 미혜가 얼굴을 활짝 펴며 웃는다. 이만하면 괜찮은 가정이다. 문득 가슴이 메면서 코끝이 시큰거렸으므로 서동수는 미혜를 내려놓고 박서현에게 다가가 섰다. 뒤쪽의 기척을 들었을 텐데도 박서현은 개수대에서 그릇을 씻으며 몸을 돌리지 않는다.

“저기, 나 중국 칭다오로 발령이 났어.”

박서현이 잠깐 움직임을 멈췄다가 다시 씻는다. 두 걸음쯤 앞에 선 박서현의 등을 향해 서동수가 말을 이었다.

“중간 간부들의 순환 근무라는 최고 경영진의 지시가 떨어져서 말야. 난 거기 공장 관리 총책임자가 되었는데, 아무래도 혼자 가야겠지?”

“…….”

“사택도 무상으로 제공되고 해외 근무 수당도 더 붙지만 말야.”

“…….”

“열흘 후에 떠나야 되기 때문에 시간도 촉박하고. 물론 11월 13일까지는 휴가야. 정말 난데없는 인사 발령이었지만 나 같은 경우가 많더라고. 그룹 전체로 100명도 넘는 것 같아.”

등만 바라보고 말하는 것에 지친 서동수가 막 몸을 돌리려는 순간이다. 박서현이 몸을 돌려 서동수를 보았다. 차분한 표정이다.

“우리 헤어져.”

말투가 나가서 밥 먹자는 것과 비슷해서 충격은 3초쯤이나 지나서야 왔다. 그러나 눈만 껌벅이고 선 채로 박서현을 보았다. 그때 박서현이 똑바로 서동수를 보았다.

“난 그냥 미혜하고 여기 살게. 위자료로 이 집 명의는 내 앞으로 해주면 좋겠어. 해주겠지?”

“…….”

“거기 마포 스타 오피스텔 1202호 정은지를 중국으로 데려가든지. 어쨌든 당신은 외롭지는 않을 테니까.”

그러더니 박서현이 입술 끝을 비틀면서 웃었다.

“나 치사한 여자 아닌 줄 알지? 영호 친구가 그 오피스텔 13층에 살아. 그래서 알아봐 준 거야.”

영호란 박서현의 남동생 박영호를 말한다. 맨날 스포츠카를 개조해서 타고 다니는 병신. 그 친구 되는 놈도 오피스텔에다 애인을 심어놓은 모양이다. 다시 박서현의 말이 이어졌다.

“소송으로 가기 전에 해결했으면 좋겠어. 미혜를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만나게 해줄 테니까. 미혜한테는 당분간 아빠가 중국 회사에서 근무하는 것으로 해놓는 게 낫겠지?”

박서현의 시선을 받은 서동수가 마침내 웃었다. 그러나 얼굴이 굳어져 있는 터라 일그러진 웃음이 되었다.

“아주 그냥 카운터펀치를 날려 버리는군. 역시 싸가지는 없는 여자야. 넌.”

“여유 부리고 체면 차릴 상황이 아니지 지금. 안 그래?”

한마디씩 박서현이 또박또박 묻자 서동수가 시선을 준 채로 머리를 끄덕였다.

“좋다. 내 스타일대로 결말을 내게 해준다면 도장을 찍지. 네 말대로 하고.”

그러고는 지그시 박서현을 보았다.

“오늘밤 나하고 마지막 섹스를 하자. 다 잊고 한판 뛰는 거다. 그럼 내일 아침에 다 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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