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 로고


통합 검색 입력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국제
인물
오피니언

(3) 1 좌천(左遷)-3

기사입력 | 2012-11-06 13:42

오피스텔 앞에 선 서동수가 12층을 올려다보았다. 왼쪽에서 두 번째 창문의 불이 환했다. 1202호실이다. 한동안 창문을 올려다보던 서동수가 핸드폰을 꺼내 버튼을 누른다. 핸드폰을 귀에 붙이자 신호음이 세 번 울리고나서 정은지가 응답했다.

“으응, 자기야?”

“응, 나야.”

심호흡을 한 서동수가 대리석 기둥에 등을 붙였다. 이곳은 오피스텔 현관 앞쪽의 휴게실이다. 벤치만 여러 개 놓인 휴게실은 텅 비었고 지붕이 없는 터라 위쪽 오피스텔의 불빛이 내려 비치고 있다.

“너 지금 어디야?”

서동수가 그렇게 물은 이유가 있다. 지난달 연락도 없이 1202호실 앞까지 왔다가 안에서 남자 목소리가 들려 놀라 돌아갔기 때문이다. 정은지한테 월세 보증금을 내주고 매월 200만 원씩 용돈을 주는 터라 서동수도 오피스텔 열쇠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날 밤 불쑥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갔을 경우를 생각하면 지금도 등이 으스스하다. 그래서 이렇게 먼저 전화로 묻는 것이다.

“으응. 나 지금 친구 집에 와 있어.”

하고 정은지의 목소리가 수화구에서 울린 순간 서동수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졌다. 머리를 든 서동수가 1202호실을 보았다. 아직도 불은 환하다.

“으응, 그래? 그럼 집에는 언제 들어갈건데?”

창문을 올려다보면서 물었더니 정은지가 대답했다.

“아마 오늘은 집에 못 들어갈 것 같아.”

“그래?”

“자긴 어디야?”

“나 술 마시고 있어.”

“오늘은 집에 일찍 들어간다며?”

“뭐, 그냥.”

“지금 12시가 다 되었어. 집에 가 자.”

“그래야겠다.”

그때 1202호실의 불이 꺼졌으므로 서동수는 영화가 끝난 느낌이 든다. 핸드폰을 접은 서동수가 기둥에 붙였던 몸을 떼면서 말했다.

“시발년, 바쁘구만.”

정은지를 만난 곳은 룸살롱이다. 룸살롱에 나온 지 며칠 되지 않은 정은지에게 월세방을 얻어주고 한 달 생활비 200만 원을 주기로 했지만 한 달 30일을 찾아가 연속 방아를 찧는다면 그야말로 도둑놈이다. 정은지만한 미모에 대학 휴학생인 22세짜리 영계를 온전한 제 것으로 하려면 최소한 30평 전셋집에 월 1000만 원은 줘야 마땅하다. 그래서 한 달에 서너 번 찾아가겠다고 미리 구두계약을 해놓았던 것이다. 그래서 서동수는 12시반이 되어서야 제 집으로 돌아왔다.

“자?”

응접실에서 TV를 보고 있던 박서현에게 물었지만 대답이 없다. 딸 미혜가 자느냐고 물은 것이다.

“3차 하자는 거 몸이 안 좋아서 그냥 온 거야.”

정은지한테 가려고 미리 박서현한테 바이어하고 3차를 가게 되었다고 연락을 했던 것이다. 옷을 벗기 전에 안방에 들어가 보았더니 미혜는 침대에 누워 깊게 잠이 들었다. 볼에 입술을 붙였다 뗀 서동수가 물끄러미 미혜를 내려다보았다. 여섯 살이지만 다섯 살 때부터 읽고 쓰기를 배워 지금은 동화책도 읽는다.

“미혜야. 아빠 짤렸다.”

서동수가 입술만 달삭이며 말하고는 심호흡을 했다. 그러고는 미혜의 볼에 다시 한 번 입을 붙였다가 떼고 나서 방을 나왔다. 그러자 서동수와 엇갈려서 박서현이 방으로 들어가더니 곧 열쇠 채우는 소리가 났다. 그러고보니 박서현은 한마디도 말을 하지 않았다.

※ 문화일보는 소설 ‘서유기’의 글과 삽화의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지합니다. 포털 상에서 블로그 등에 무단 사용하는 경우 인용 매체를 밝히더라도 저작권법의 엄격한 적용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많이 본 기사 Top5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 카카오톡

핫클릭 ✓

[AD]

인터넷 유머mor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