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 로고


통합 검색 입력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국제
인물
오피니언

(1) 1 좌천(左遷)-1

기사입력 | 2012-11-01 16:32

사고(事故)다. 당당하게 맞겠다. 일주일 전부터 그렇게 마음먹고 있었으면서도 막상 본부장 김대영 앞에 선 서동수(徐東秀)의 머릿속에 만감이 교차하고 있다. 입사 경력 8년. 그동안 갖은 풍상을 겪으면서 팀장 직위에 오른 지 1년 반. 동양전자의 3부 3팀장 서동수가 이제 그야말로 인생의 기로에 섰다. 터닝 포인트(turning point)라고 하는가?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어, 거기 앉아.”

김대영이 소파의 앞쪽 자리를 가리키며 말했으므로 서동수가 조심스럽게 앉는다. 45세, 경력 18년. 영업본부장 겸 상무이사. 항상 서동수에게 호의적이었던 김대영의 얼굴도 오늘은 굳어져 있다. 김대영이 입을 열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묻겠다. 너를 위해서나 회사를 위해서나 털어놓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해서 그러는 거다.”

서동수는 시선만 주었고 김대영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이어졌다.

“영일전자 최영일이도 너한테 간 돈이 위아래로 뿌려졌다고 증언을 했어. 너만 입을 열면 돼.”

“…….”

“그럼 넌 12개월 감봉에 현직이 유지된다. 네 경력이 아깝지 않으냐?”

“…….”

“그리고 네가 분 위아래 놈들도 비슷한 처벌을 받고 끝나는 거다. 그게 서로 좋다는 거다. 윈윈이지.”

그러나 서동수는 김대영의 입술 끝이 조금 비틀리는 것을 보았다. 금방 원상으로 회복되어서 놓칠 뻔했던 장면이다. 김대영이 똑바로 서동수를 보았다.

“자, 말해라. 내가 부탁한다. 그리고 같이 다시 일하자.”

서동수는 소리 죽여 숨을 뱉는다. 일주일 전, 서동수의 3팀이 관리하던 하청공장 영일전자가 본사 기조실 감사팀에 걸렸다. 14개월 동안 1억3000만 원이 리베이트로 송금되었는데 그 계좌를 추궁한 결과 팀장 서동수의 차명계좌라고 자백을 했다. 현재 계좌의 잔액은 없다. 그런데 영일전자의 사장 최영일이 그것으로 끝내지 않았다. 자백하게 된 것이 분했던지 그 돈은 서동수 혼자만 먹은 것이 아니라 위아래 골고루 뿌려졌다고 폭로한 것이다. 서동수에 대한 미안함 반, 자폭하는 심정이 반쯤 섞인 소행이었는데 이젠 공이 서동수에게로 넘어왔다. 나눠 먹은 위아래 인간을 대라는 것이다. 이제 서동수는 입을 꾹 다물고 혼자 책임을 뒤집어쓴 채 김대영 앞에 앉아 있다.

“어떠냐?”

다시 김대영이 물었을 때 서동수는 쓴웃음을 지었다.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예, 저 혼자 다 먹었습니다.”

“병신 같은 자식.”

눈을 치켜뜬 김대영이 이 사이로 자근자근 말한다.

“그런 관행이 있다는 건 모두가 알아. 나쁜 관행이었기 때문에 이 기회에 척결하려는 회사의 의도였어.”

김대영의 말이 이어졌다.

“시범 케이스로 말이다. 하지만 네가 이러니 다음 기회로 미뤄야 할 것 같다.”

“죄송합니다.”

“그 대신 너는 회사를 떠나야 된다.”

이제는 외면한 채 김대영이 말을 잇는다.

“전자에는 있을 수가 없어.”

“…….”

“그룹 계열사도 마찬가지.”

길게 숨을 뱉은 김대영이 머리를 들고 똑바로 서동수를 보았다.

“곧 인사명령이 날 거야. 돌아가.”

그러자 자리에서 일어선 서동수가 머리를 숙이고는 몸을 돌렸다. 좋다. 끝냈다.

※ 문화일보는 소설 ‘서유기’의 글과 삽화의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지합니다. 포털 상에서 블로그 등에 무단 사용하는 경우 인용 매체를 밝히더라도 저작권법의 엄격한 적용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많이 본 기사 Top5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 카카오톡

핫클릭 ✓

[AD]

인터넷 유머more >